오늘 한남동에 있는 태국 대사관을 다녀왔다.
주차 공간을 겨우 찾고 보니 대사관과 너무 멀다 ㅠㅠ
운동이라 생각하고 대사관을 향해 열심히 걸어 내려오는데
맞은편 쪽에서 한눈에 보기에도 이방인 같은 나이 든 승려 한 분이
힘겹게 오르막길을 오른다.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두 손을 합장하고 고개를 숙인다.
헉! 순간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두 손을 합장했다.
"사와디카"하면서 ㅋㅋ
스님이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한테 '부처님 모습이 새겨져 있는
구리 빛깔이 나는 작은 기념품을 건넨다.
헐!
난 기독교 신자인데!
거절했는데 기꺼이 손사래 치는 내 손위에 고이 얹어 놓으신다.
할 수 없어서 받아 두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묵주를 주신다.
'아~~~ 이건 아니다 싶어' 정중히 거절하는데 어느새 내 손목에 걸쳐져 있네ㅠ
주여~~~~~~~~~
감사히 받고 돌아서는데 이방인의 입에서
내 귀를 의심스럽게 하는 단어가 가던길을 멈추어서게 했다.
"씨주", "씨주"
손가락으로 돈을 달라는 제스처를 하면서 "씨주"를 달라고 한다.

헐 ㅠ
그래서
나는 내 손에 들려졌던 기념품과 묵주를 그분 손위에 고이 다시 쥐어 드렸다.
그리고
말했다.
I am sorry I have no money.
그랬더니
그분 왈, 손가락으로 은행을 가리키면서
"에띠엠 (ATM), 에띠엠"
주여~~~~~~~~~~
돈이 있으면 드리고 싶었지만 현찰은 한 푼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쏴리"만 열심히 외치고 빠른 걸음으로 대사관을 향해 뛰어갔다.
아직도 이방인 노승의 환한 자비로운 얼굴이 잊히지 않는 것은 왜일까?
낯선 땅에 와서 고생하는 애처로움일까?
아님, 내 처지와 비슷하다고 느껴서일까?
못내 "씨주"를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긍휼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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