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mpelune를 지나 용서의 언덕을 향해서
우리는 아름다운 대도시 Pampelune를 지나는 길에 유채꽃이 베푼 향연에 참석해서 맘껏 노란 향기와 냄새에 취하고 그다음 행선지인 Uterga로 향했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긴 여정 가운데 길 위에서 만나는 상징적인 장소들이 몇 군데 있다.
그중에 하나가 '용서의 언덕'(Alto del Perdon)이었다. Pampelune에서 12km 떨어진 곳에 약 40개의 풍력 터빈과 함께 공유하고 있는 '용서의 언덕'을 마주치게 된다. 스페인어로 Alto del은 '~의 꼭대기'라는 뜻이고 Perdon은 영어로 'excuse me'라는 말이다. 직역하면 '나를 용서해주는 꼭대기'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언덕의 길은 계속 가파르게 우리를 안내했다. 광활한 밀밭을 좌우로 두고 계속 끝이 어디인 줄 모르는 길을 걷다 보니 길의 소실점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면서 짧게 스쳐간 팜플로나 도시가 못 내 아쉬워 되돌아보니 점 점 작은 점들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스쳐간 인연을 마음에 묻고 황톳빛이 도는 흙길을 1시간 정도 올라가니 인터넷에서 사진으로 보았던 짙은 밤색의 철제 조형물이 바람을 가르며 언덕 위에서 순례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용서의 언덕
거센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사방으로 흩어 놓았다. 강한 공기의 저항을 뚫고 강철로 된 12개의 순례객 조각상의 발걸음이 순례자와 같은 방향으로 향해 있다.
1996년 순례의 길로 상징되는 이 조형물은 Vincent Gelbete의 작품이다. 원래 이 자리는 19세기 중엽까지 이곳을 지켰던 '용서의 성모'를 모시던 작은 성당은 병들고 지친 순례자들을 위한 병원 역할도 함께 했던 곳이라고 한다. 성당은 사라지고 12개의 철제 순례객 조형물만이 순례객들을 맞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전통적으로 죄 지은자, 영적으로 고갈된 자, 용서가 필요한 자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12개의 조각품
이 조각품은 중세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발전 단계를 통해 순례자와 순례자의 작은 역사를 행렬의 형태로 보여준다. 12명의 순례자 중 첫 번째 순례자는 길을 찾아가는 모습으로 나타나며 순례에 대한 관심의 시작을 보여준다. 다음은 까미노의 인기 상승 또는 성장을 묘사하는 세 그룹이다. 이 세 사람 뒤에는 상인 또는 말을 탄 상인으로 묘사된 또 다른 그룹이 있는데, 이는 순례자들에게 상품을 판매하는 상인들의 중세 시대를 상징한다. 14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불안으로 인한 순례자의 감소를 특징짓는 고독한 인물이 그들로부터 떨어져 있다. 행렬의 맨 끝에는 20세기 후반에 순례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인기 상승을 보여주기 위해 묘사된 두 명의 현대 인물이 있다.
용서
이 길을 스쳐 지나가는 내내 생각했다. '용서'라는 단어에 생각과 마음이 머물면서 '나는 어떤 용서를 구해야 되는지, 또 누구를 용서해야 되는지!
나는 뻔뻔하게도 구해야 되는 용서보다는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만 연필 두 타스 정도 나왔다. 용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길을 떠나기 전에 오랫동안 관계해온 사람에게 배신감을 크게 느꼈던 사건이 떠올랐다. 사실 길을 걷다 가도 생각이 떠오르면 억울하고 분해서 마음의 안정이 안되었었다.
나는 남편 덕분에(?) 공적인 자리에서 오래 살아왔다. 공적인 자리에 있다는 것은 늘 사람들의 시선과 감시(?), 그들이 자기 잣대로 던지는 평판 속에서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순례의 길을 향하기로 결심한 이유도 걸레처럼 너덜 해진 영혼을 치유하고 가식 없이 헐벗은 나와 대면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공적으로 살아온 내가 아닌 창조주가 나를 만든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으로 매일 힘겨운 걸음을 떼었다. 그런데 '용서'라는 단어 앞에 마음이 먹먹함을 느꼈다.
나를 찾기를 원한다면 살면서 생긴 불순물들을 마음속에서 몰아내야 한다. 비우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다! 비워야 나의 헐벗은 내면을 진정으로 마주 대할 수 있다.! 대장 내시경 검사하기 전날 밤에 병원에서 준 소금물 섞인 액체를 마시고 배설물로 가득 찬 장 속을 비워야 대장의 건강 상태를 볼 수 있듯이 말이다.
'용서'는 내 영혼의 평안을 위해 내속에 가득 쌓인 마음의 배설물을 내보내는 신호임을 이 먼 타국 '용서의 언덕'에서 깨닫는다.
Uterga로 발걸음을 옮기며
팜플로나에서 Uterga (우테르가)로 내려가는 길은 산티아고의 또 다른 중요한 거점이 된다. 아쉽게도 가는 길이 평탄하지 않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다리가 풀린 순례객들이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 조심해야 된다.
시에라를 통과한 후 Uterga로 들어가는 입구는 여행자들에게 잠시 쉬어 가라고 손짓을 한다. 마치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어! 쉬어가면 어떨까?’라고 말을 걸어주는 것 같았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 지나치는 스페인 북쪽의 대부분의 마을들은 매우 작다. Uterga도 예외 없이 아주 작은 마을이며 약 20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보이는 삶은 아름다운 클래식 영화처럼 여유롭고 평화로운 일상을 연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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