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terga를 뒤로하고
Uterga에서 하룻밤을 유하고 그 전날 삶아 놓은 계란과 과일로 아침을 대신한 후 부지런히 길을 찾아 나섰다. 말은 부지런히 나섰다고 하지만 알베르게에서 우리는 거진 마지막 주자로 길을 나선 순례자 중의 하나였다. 급히 서두를 이유도 없었고 밤새 순례객들이 코고는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친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개운하지 않았다. 하루에 20km 이상 걸으면 피곤할 텐데 어찌 된 일인지 나의 정신은 너무 맑고 초롱초롱해서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처방받은 수면유도제를 도움 받아 매일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만성 수면장애를 오랜 전부터 앓고 있었다. 길을 걸으면 고단해서 잠드는데 괴로움이 없을 줄 알았는데 별 도움이 크게 되지 않았다.
소원하던 산티아고 길을 걷게 되면 그동안 일상에서 씨름하던 것 들하고는 이별하는 줄 알았다. 이것은 망상 중에서도 과대망상이었다. 일상에서 겪는 일들은 없지만 또 다른 문제들을 매일 만났다. 일단 낯선 타국에서 매일 길을 찾아 떠나야 하고 숙소도 구해야 하며 더군다나 매 끼니를 때우는 일은 그 부담감이 상당했다.
삼식이와의 동행
내 남편은 삼식이다! 삼식이라는 단어 속에는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어쨌든 나는 삼식이에게 매 끼니를 챙겨 주고 그의 빨래를 해줬다. 세탁기 사용하는 돈이 아까워 매일 손세탁을 해서 입었다. 처음에는 각자 옷을 빨아 입었는데 어느 날 남편이 걷다가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손바닥에 상처가 났다. 빨래는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되었다. 그 이후로도 그는 계속 손을 다쳤다. '이 인간이 빨래하기 싫어서 고의적으로 다치는 거 아냐?!' 하는 강한 의구심이 올라왔다. 예를 들어, "사과를 반으로 잘라 달라"라고 요구했는데 자기 손바닥 위에 사과를 놓고 자르다가 힘 조절을 못해 본인 손바닥에 칼집을 내었다. 명확한 사기성 자해다!!! 점점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늘어나니깐 나중에는 남편의 부상이 안쓰러운 것이 아니라 짜증과 함께 살의가 생겼다. 가끔 뉴스에서만 들었던 친족 간의 살인 사건이 떠올랐다. 삼식이와의 동행은 때로는 살기까지 느껴졌다.
순례자의 일상
순례자의 일상은 매우 단순했다. 하루 반나절은 걷고 나머지 시간은 빨래와 요리 그리고 설거지를 했다. 갑자기 내가 왜 여기에 왔나 싶었다! 집에서 하던 일이 축소만 되었지 그대로 하고 있지 않은가!
삼식이가 미웠다. 삼식이는 여태까지 집안일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어쩌면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 당연스러운데 그의 행동이 눈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거슬렸다.
마침 이때 순례의 길을 걷던 시점과 맞물려 갱년기가 서서히 징조를 보이던 때였다. 예전에는 그냥 넘어갈 일들이 내 오감을 건드려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아~~~~ 힐링하기 위해 산티아고를 걷는데 매일매일 남편과 부딪히면서 마음은 점 점 황폐해져 가고 있음을 느꼈다. 교양 있는 여자가 되고 싶은데 고상함 하고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면서 심술궂은 마녀로 바뀌어 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한국 부부 VS 서양 부부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일은 순례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인 중년 부부를 여러 커플 만났는데 우리 부부와 별다르지 않고 그들도 티격태격했다. 남편과 함께 걷는 부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다시는 남편과 오지 않겠다"였다. "혼자 오거나 친구와 오고 싶다"고들 한다. 다들 남편 챙기고 밥 해주느라 지친 모습들이었다.
한국 아줌마들의 삶의 실상, 현주소를 산티아고 길에서 보게 될 줄이야!!! 난 한국 아줌마들을 향해 이렇게 절규하고 싶다. "한국 삼식이와 동행하는 대한민국 아줌마들!!! 그대들은 잔다르크 보다 용맹하고 성모 마리아보다 더 성스럽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순례자입니다!!!!"라고 이 연사는 부르짖는다.
서양커플
우리와 달리 서구 부부 커플들을 보면 같이 손잡고 오손도손 이야기하면서 정답게 걷는다. 무슨 할 얘기들이 쉼도 없이 쏟아 내는지!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거기다 숙소에 도착하면 부인 발도 씻겨 주는 남편도 보았다. 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간이 뒤집힌다. 내 삶이 한탄스러울 때마다 친정어머니로부터 자연스럽게 주워들은 18번 암송 문장이 자동적으로 뛰쳐나온다. "저 여자는 무슨 복이 많아서 저런 호강을 다 누리나!!'
동행! 참 아름다운 단어이지만 누구와 '동행'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산티아고를 걸으면서 남편과 나의 관계거리가 매일 측정이 된다. 사이가 좋으면 서로 나란히 같이 걷고, 그렇지 않으면 거리가 100m까지 차이가 난다. 물리적 거리를 통해 심리적 거리를 가늠해 보게 된다.
왕비의 다리
Lorca로 향하는 길은 내 마음만큼 척박했다. 길은 울퉁불통하고 외졌으며 그동안 감탄하고 황홀함으로 취해서 걸었던 길과는 달랐다. 그나마 저 멀리 보이는 Puente La Reina(푸엔테 라 레이나)의 '왕비의 다리'가 힘든 길을 걸어온 나를 위로해 준다.
그 다리 아래에 보이는 강물은 내 마음과는 달리 고요히 물소리의 리듬 맞추어 흐른다. 점심때가 되자 배에서 식사 시간을 알리는 신호를 요란스럽게 보낸다. 우리는 푸엔테 라 레이나 마을 안에 있는 빵집에 들어가 남편 팔길이 만한 바케트를 샀다. 먹을 때만큼은 평화 협정을 맺어 둘이 언제 티격태격했는지 다 잊고 공원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오손도손 함께 샌드위치를 만들어 시장기를 채웠다.
Lorca
Lorca (로르카)는 스페인 남동부에 있는 무르시아 지역의 자체 공동체에 있는 지방자체단체이자 도시로, 무르시아에서 남서쪽으로 58km 떨어져 있다. 인구는 2020년 기준으로 95,000명이 넘는다. 이 도시에는 로르카 성과 성 패트릭에서 헌정된 대학 교회가 있다. 중세에 Lorca는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의 국경 도시였다. 2011년에는 강도 5.1의 지진으로 도시가 심하게 손상되었으며 여러 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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