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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스페인 산티아고길을 걷다

Villava에서 계란으로 떡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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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엔 까미노

올라

이제 순례객들을 길에서 만나면 이 단어가 자연스럽게 입에서 뛰쳐나온다. 그럼 메아리치듯이 상대방 순례객도 부엔 까미노라고 해 준다. 순례자들끼리 서로 응원을 해 주는 말인데 스페인어로 좋은 길이라는 뜻이다. ‘올라는 스페인어로 안녕이라는 말이다. 처음에는 부엔 까미노단어 사용이 입에 붙지 않아서 주로 올라라는 인사말을 사용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스페인 사람들이 참 친절하다고 느꼈다. 일단 스페인 사람들은 다른 서구인들에 비해 신체가 크지 않고 아담해서 덜 위협적으로 느껴져 친근함이 들었고 또한 길을 헤매고 있으면 함께 길을 찾아주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마음이 참 고마웠다.

 

Zubiri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우리는 그다음 행선지인 Villava로 떠났다. 순례의 모든 길이 다 아름답지만 Villava로 가는 길은 고단한 여정에 선물 같은 풍경을 선사했다. 끝이 어디인 줄 모르는 광활한 밀밭에  바람결 따라 흔들리는 초록 물결은 나의 마음도 함께 흔들어 놓았다. 밀밭의 초록 향기를 맡으면서 걷는 순례의 길은 도파민이 마구 뿜어져 나오는 힐링의 시간이었다. 자연을 잘 가꾸는 스페인 사람들이 존경스러웠고 자연과 조화를 잘 이룬 건축물들이 그 아름다움을 더 빛내 주었다.

 

밀밭 사이로 걷고 있는 순례객들


매일 아침에 배낭을 메고 낯선 길로 떠나는 몸과 마음은 마치 수도승이 재단 앞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우리의 태도도 진지하고 경건했다. 걷는다는 행위가 예배처럼 신성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길을 걷다 보니 순례의 길을 인간만 걷는 것이 아닌 것을 길 위에서 발견했다. 달팽이다!!! 이른 아침부터 느리지만 부지런히 길 위에 있는 달팽이를 마주치면 반가웠다.

 

남편과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구부리고 앉아 그들의 행보를 한참 쳐다봤다. 길 위에는 순례객들의 발을 미처 피하지 못한 그들의 동료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나부라져 있었다. 달팽이는 무기도 없고 위험에 피할 수 있는 빠른 발도 달리지 않았고 평생 몸에 짊어지고 있는 집은 너무 약해서 햇살에 오래 노출되면 말라비틀어져 부서져 버린다. 무슨 힘으로 이 힘든 세상을 버티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봤다. 아마 느리지만 꾸준함이 그들의 최대의 무기가 아닐까 싶다.

 

순례의 길 위에서 만난 달팽이

 

Villava
비야바(바스크어: Atarrabia)는 스페인 북부 나바라주에 있는 자치시이다. 인구는 약 10,000명이며 마을은  Navarre
의 수도인 Pamplona에서  4km 떨어져 있다. 이 마을은 1184 년 나바라의 현자 산초 6세가 세웠다. 몇 세기 동안
 Villava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지만  1960년대에 상당히 성장하여 Pamplona의 중요한 산업 교외 지역이 되었다고 한다.

 

Villava는 순례객들이 별로 없었다. 그다음 대도시인 Pampelune에서 주로 짐을 푸는 것 같았다. 우리가 구한 숙소는 3층짜리 공립 알베르게였다. 보통 공립 알베르게는 시설이 많이 낙후되었는데 Villava에 있는 알베르게는 꽤 깨끗하고 현대적이었다. 우리의 숙소는 2층에 침대가 20개쯤 있는 방에 배정되었다.

 

배낭을 내려놓자마자 마트로 달려가서 식료품을 샀다. 순례의 삶은 참 단순하다. 자고 걷고 먹고! 이게 전부다. 우리는 젊은이들처럼 bar에 가거나 레스토랑을 이용하지 않고 직접 음식을 해 먹었기 때문에 요리하는 기쁨이 하루 일과 중에 제일 컸다.

 

 나는 마트에 가면 미친 듯이 이성을 잃고 카트에 요리 재료를 담았다. 그러면 남편은 내 뒤를 따라다니면서 조용히 내가 선택한 아이템들을 내려놓는다. 그는 안다. 내가 구입하는 재료들이 2인분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남는 재료들은 고스란히 남편 배낭 안에 들어가 무거운 짐이 되어 내일 길을 걸을 때 그를 힘들게 만들 것이라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안다! 물론 나도 안다!!! 그런데 요리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나에게는 귀중한 보석을 빼앗기는 것보다 더 큰 상실감이 왔다.

 

어쨌든  알베르게 안내서에는 부엌 사용이 가능하다고 해서 마트에서 식료품을 구입했는데 가스레인지 사용은 안되고 전자레인지만 가능하다고 한다. 결론적으로는 알베르게에서 운영하는 식당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주 단백질 공급원은 계란이었다. 나는 아침에 길을 떠나기 전에 계란을 삶아서 챙겨 다녔다. 점심으로 샌드위치 안에 넣거나, 배고프면 간식으로 먹기도 하고 친교를 맺을 때 삶은 계란 하나 주면 상대방의 마음이 확 열리는 것을 경험해서 늘 챙겼다. 이날도 한 팩에 15개가 든 계란을 샀다.

 

아~~~가스레인지 사용이 어렵단다! 순간 훅하고 열이 올라왔지만 이성을 찾은 후 요리할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특히 계란은 배낭에 넣고 다닐 수도 없는 아이템이기 때문에 무조건 요리를 해야 되었다. 그래서 계란 5개는 전자레인지를 이용해서 찜을 만들었다.

 

남은 계란 10개는 모두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삶았다. 한 시간 정도 걸린 것 같았다. 감사하게도 우리 외에는 아무도 부엌을 이용하는 순례객이 보이지가 않았다. 우리는 그날 저녁과 다음날 아침까지 닭트림이 올라 올정도로 계란으로 떡을 치는 식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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