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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스페인 산티아고길을 걷다

Zubiri에서 나를 울린 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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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inal에서 충분한 쉼을 가진 우리는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순례의 길 이후에 계속되었던 하혈도 그쳤다. 처음에 순례의 길을 계획할 때 우리의 목표는 순례의 길 800km 완주였다. 그러나 막상 목표를 세우고 나니 약 800km 되는 거리를 어떻게 완주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그 걱정은 길을 나서기도 전에 부담감을 넘어서서 두려움으로 마음을 짓 눌렀다.

 

그런데 옛 속담에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800km라는 목표에 집중하다 보면 걷는 즐거움은 없어지고 목표만 남아 괴로운 여정이 될 것이었다. 원자가 모여서 분자 구조를 만들어 내듯이  매일 20km씩 걷다 보면 언제 가는 산티아고에 도착하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을 갖고 여정을 계획했다. 매일 각자의 배낭을 메고 20km 걷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다른 순례객들도 매일 평균적으로 걷는 거리니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너무 힘들면 쉬워 가면 되지’! 하는 생각을 하니 마음의 평안이 생겨 발걸음을 가볍게 뗄 수 있었다.


우리는 건강에 무리가 가지 않게 Espinal에서 약 10 km 떨어진 Zubiri 마을에 도착했다.  세 번째 머문 알베르게는  침대가 99개 준비된 공립 숙소였다. 우리는 순례길을 걷는 내내 주로 비용이 저렴한 시에서 운영하는 공립 알베르게에게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또한 우리는 철저히 아날로그 방법으로 길과 숙소를 찾아 나섰다. 길을 떠나기 전에 프랑스 생장 순례의 길 안내소에서 제공한 숙소 알베르게가 소개된 종이 한 장과 길 곳곳에 순례의 길을 안내하는 화살표나 순례의 길 상징인 조개그림만 보고 길을 찾아 떠났다. 가끔은 지나가는 행인에게도 도움을 받아 여정을 이어갔다.

 

순례의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


Zubiri
Zubiri는 Arga강을 가로지르는 Romanic다리가 있는 스페인 Navarre의 작은 마을이다. Zubiri는 Camino de Santiago의 French Way경로에 있다. 

 

Zubiri 가는 길 위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소 무리들


Zurbiri에 도착한 날은 토요일 오후였다. 공립 알베르게에서 여장을 풀고 부실하게 먹은 점심과 이른 저녁을 준비하려고 마트로 갔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은 큰 도시를 제외한 다른 도시들은 토요일 3시 이전까지만 영업을 한다고 했다. 너무 황당했다.

 

비상식량을 찾기 위해 배낭에 있는 짐을 밑바닥부터 다 뒤집으니 그 전날 먹고 남았던 쌀과 야채 봉지가 나온다. 감사! 무조건 감사! 순례의 길을 걸으면서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좋은 습관을 갖게 되었다.

 

공동 부엌에 가서 밥을 한 후 야채를 다쳐 볶음밥을 만들어보니 족히 10명은 먹을 수 있는 양이 나왔다. 마침 비행기에서 제공받았던 튜브형 볶음 고추장이 있어 볶음밥 위에 하트까지 그려놓고 먹으려는 찰나에 저 건너편 식탁에 몽골인처럼 생긴 모녀(12세쯤 되어 보이는 딸)가 말라빠진 빵과 요플레로 이른 저녁을 먹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오지랖과 측은지심이 동해 앞바다만큼 넓은 나! 절대 그냥 못 지나가는 나!  내 발걸음은 자석이 당기듯이 두 모녀를 향해서 옮겨졌다.

 

Zubiri 의 공립 알베르게


: Can you speak English?

여자: 한국 사람이세요?

: (어라! 몽골인이 아니네!) ! 한국 사람이시군요! 제가 볶음밥을 많이 했는데 같이 드실래요?

모녀: (동시에 1초의 망설림과 거절도 없이) !!!!! 감사합니다.

여자: 그렇지 않아도 저희가 나흘 동안 밥을 구경을 못했어요. 마트는 일찍 문을 닫았고 먹을 것이 빵 밖에 없었어요. 딸이  엄마, 밥 먹고 싶다”라고 하는데 쌀을 구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딸하고 기도했어요. 저희가 기독교인은 아닌데 하나님 살아계시다면 저희에게 밥을 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기도를 마치자마자 하나님이 바로 응답을 해주셨었어요.

: 우리에게 천사가 나타났어요!.


아~~~ 졸지에 나는 그들의 천사가 되었고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는 하나님의 메신저가 되었다. 갑자기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어린 딸이 밥을 먹고 싶어 하는데 해줄 수 없는 엄마의 애가 탔을 마음이 느껴지니 내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이 모녀는 나의 호의에 무엇이든지 보답하고 싶었던지 그들이 가지고 있던 빵과 요플레를 함께 먹자고 우리 앞에 내놓는다. 우리는 밥을 매개체로 해서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고 우정을 맺게 되었다.

 

순례객이 걷는 여행 코스가 똑같아서 운 좋으면 같은 순례객을 또 만날 기회를 갖는데 이 모녀는 산티아고 도착하기 전까지 일곱 번이나 우연찮게 같은 숙소에서 만나는 인연을 가졌다.

 

그들은 우리가 순례의 길을 걸으면서 처음 만나는 한국인이었다. 그것도 어린 딸을 데리고 여행하는 모녀를 만났다. 학교를 다녀야 할 나이인데 산티아고 길을 걷는 것이 궁금했다. 궁금한 것은 물어 봐주는 것이 예의라고 배웠다!.


: 어떻게 아이와 길을 걷게 되셨나요?

(뜻하지 않은 그녀의 과거사를 듣게 되었다.)

여자: 저는 아이가 어렸을 때 남편과 이혼했어요. 어린아이는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맡기고 저 혼자 서울에서 과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어요. 제가 명문대 출신이어서 그런지 과외가 잘 되어 학원까지 경영하게 되었어요. 아이한테는 거의 가지 못했어요. 그러던 차에 유방암이 걸려 수술하고 회복하면서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지요. 어느 정도 회복이 되자 부모님한테 맡긴 아이를 10년 만에 찾아왔어요.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살아서 그런지 아이가 저에 대한 정이 하나도 없었어요. 처음에는 엄마라고 부르지도 않았어요. 제가 아이한테 밥을 해준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제가 공부만 잘했지 생활인으로는 많이 부족해요. 함께 살면서 아이하고 부딪히고 갈등을 겪게 되었어요. 아이가 학교 적응도 못하고 문제를 일으키자 담임 선생님이 정신과 상담을 받아 보길 권하셨어요. 여행 오기 전까지 치료를 받았지만 큰 호전이 없어 아이의 학업을 중단시키고 여행을 결심하게 되었어요. 아이와 여행하면서 서로 부대끼다 보면 정도 생기고 치유도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산티아고를 걷는 것을 결정했습니다.


정작 말을 하는 당사자는 담담하게 이야기하는데 사연을 듣는 나는 내내 울었다. 어린아이가 너무 가여워서, 그리고 엄마인 그녀가 안쓰러워서 눈물이 멈추지가 않았다. 저마다 걷는 사연이 순례객마다 다양한데 이 모녀의 사연은 나의 감성을 건드렸고 나의 눈물샘을 터지게 만들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눈물이 난다. 여행을 다녀와서도 가끔 Zubiri에서 만난 이 모녀가 생각난다. 앞으로 여정 가운데서도 이 모녀의 이야기가 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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