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나의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의 길을 걷는 것이었다. ‘마음의 소원을 두고 있으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정말 죽기 전에 꼭 한 번 밟아 보고 싶은 땅이었다. 나는 매일 ‘먹고 자고 걷고!’만 하는 것을 일상의 삶으로 누리고 싶었다. 남북한 통일만큼 강한 염원을 가지고 매일 기도했다.
나의 소망은 현실이 되어 드디어 2016년 봄에 이루어졌다. 나는 이때 사람들하고 부대껴 시달리면서 사는 삶에 너무 지쳐 있었다. 늘 나의 안테나는 곤두서서 사람을 살펴야 하고 배려하는 삶에 서서히 나 자신이 병들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나의 원래 계획은 혼자 그 길을 고독하게, 외롭게 걷는 것이었다. 나의 너덜너덜해진 심신을 자연을 벗 삼아 매일 걸으면서 깨달은 것을 묵상하면서 치유받고 싶었다.
인생이 계획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남편이 3개월 휴가를 받아서 함께 동행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남편은 완강히 이 여행에 대해 반대했다. “왜 자신의 휴가에 힘든 고생의 길을 걸어야 하냐고” 하면서 강한 저항을 보였다. 남편이 산티아고 길을 걷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나는 ‘서로 따로 여행할 것을 제안’하자 더 성질을 낸다. 남편은 “부부가 함께 가야지, 어떻게 각자 가냐고” 하면서 따로 여행 가는 것에 대해서도 거부했다.
Dream comes true.
산티아고 길을 걷고 싶은 소망이 너무나 큰 나는 남편의 동의를 얻기 위해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남편의 비위를 맞추었다. 나의 진심과 노력이 통했는지 남편의 허락이 떨어졌다. 나는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2주 만에 모든 것을 준비해서 산티아고길로 향했다. 우리의 체력단련은 동네 뒷산에 있는 산책로를 두 번 다녀온 것이 다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내내 후회가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그야말로 남편하고 함께 걸은 산티아고 길은 순례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아~~~ 그때 남편이 안 간다고 했을 때 그의 의사를 존중했어야 되었는데 말이다!.’ 아~~~ 데리고 오지 말았어야 했었는데! 하면서 나를 원망했다. 아니! 신도 원망했다! ‘왜 나에게 이런 배우자를 허락하셨는지’ 하면서 신에게도 따졌다. 왜냐면 우리는 산티아고 길을 걷는 한 달 동안 무지 다투었기 때문이다.
생장에서부터 시작된 순례의 길
우리의 순례 여정은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Saint Jean Pied de Port) 에서 시작되었다.. 피레네산맥 자락 아래에 있는 생장은 너무 아름다운 작은 마을이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4월 말이어서 날씨가 꽤 추웠지만 적지 않은 순례객들로 북적였다.
산티아고까지 가는 순례의 길은 15개가 넘는다고 들었다. 처음 산티아고의 길을 걷는 초보자들에게 제일 많이 알려진 루트는 프랑스 생장에서부터 시작해서 스페인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것이다. 생장은 ‘야고보의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의 시작점이다!. 보통 순례자들은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동이 트자마자 순례의 길을 시작한다. 모두들 피레네 산맥을 넘을 준비를 하면서 생장에서의 첫날밤에 잠을 설친다. ‘산티아고’까지 총 800㎞를 걷는 대장정을 시작하는 순례자들의 마음과 사연과 표정은 다 다르다.
피레네 산맥 넘어 론세스바예스 수도원으로 가는 여정
산티아고 순레길의 백미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는 길이다. 이미 다녀온 순례자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아 칭송하는 길이다. 앞으로 가야 할 고단한 순례길에 대한 선물이라고도 한다. 생장에서 론세스바예스까지의 거리는 약 27km였다. 첫날에 긴 거리를 걷는 것에 대해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7~8시간 걸린다고 한다. 처음에는 길이 완만하지만 갈수록 가파른 길이 나오고 험악한 곳도 있어서 가끔 대형 사고가 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우리는 짐을 미리 도착지인 론세스바예스에 보내 놓고 작은 배낭 하나만 가지고 이런저런 염려를 안고 생장을 떠났다.
그런데 이런 걱정은 생장을 벗어나자마자 눈 녹듯이 사라졌다. 눈에 다 담을 수도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넓은 호밀밭과 야트막한 푸른 언덕에는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목가적인 풍경이 숨을 막히게 할 정도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고원의 풍경에 넋을 잃고 걷다 보니 ‘오리손’이라는 곳에서 첫 번째 알베르게(Albergue, 순례자 숙소)를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파란 언덕에 그림같이 놓여 있는 집들을 구경하면서 ‘오리손’에서 커피 한 잔과 점심으로 싸 간 샌드위치를 먹었다.
미국 청년과의 대화
점심 후부터 걷는 길은 집 한 채 없는 허허벌판과 약간의 가파른 산길들이 계속 놓여 있어 힘들고 좀 지루했다. 우리의 탄성도 점점 줄어들었을 즈음에 한 미국 청년과 보폭이 맞추어졌다. 우린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정말 궁금했다. 사람들은 왜 이 길을 걷는지!! 그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그동안 죄를 많이 지어서 걸으면서 속죄받으려고 한다"라고 했다. 크스천이냐고 묻자 ‘그렇지는 않다’고 하면서 이어서 말한다. "일상에 매몰되어 살다 보니 어느 날 인생이 허무해지더란다. 그러면서 그동안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니 너무 많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았단다. 그래서 인생의 무거운 죄의 짐을 벗고 싶어서 걷는다"라고 했다.
나는 그가 참 멋있는 청년이라고 생각했다. 젊은 나이에 자신의 실존을 보았다는 것도 멋있고, 잘 나가던 인생의 길을 멈추어 서서 인생 중 가장 귀한 시간을 내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 위해 길을 걷는 것도 멋있었다. 그의 결단과 용기도 아름다웠다. 그때 알았다. 피레네 산맥의 풍경도 아름다웠지만 순례의 길을 걷는 그 청년의 발걸음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느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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