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서 우연히 마주침
독일 국화인 수레국화는 여름에 피는 꽃이다.
내가 살았던 곳이 따뜻한 남쪽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꽤 쌀쌀한 시기에 수레국화를 시골 들판에서 발견했다.
수레국화를 처음 발견했을 때 마음은 경이로움과 동시에 '얼마나 추울까!'였다. 바람막이 하나 없는 들판에 저 여린 꽃대가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서 흔들리고 있는 것이 너무 안쓰러웠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들을 우리 집에 데리고 와서 따뜻한 안식처를(?) 마련해 줬다. 꽃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온전한 나의 이기심만 가지고 말이다!
갑자기 작은 아이의 어렸을 때가 떠올랐다.
에피소드
작은 아들이 초 2 학년 때다.
12월쯤 되었을까?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내려놓지도 않은 채 '뜨거운 물 한잔'을 달라고
했다. 별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아이가 왜 뜨거운 물을 찾을까!
'밖이 너무 추우니깐 따뜻한 물이 먹고 싶었나?' 생각을 하면서 포트에 물을 끓여서 약간의 찬물을 섞어
주었다. 그런데 아이가 컵을 들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아이의 행동이 궁금해서 따라가 봤다. 집 앞에 웅크리고 앉아서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시멘트 바닥에 물을 붓고 있었다. 아이의 행동이 신기해서 물었다.
"00아 뭐 하고 있는 거야? "
" 어, 학교 갔다 오면서 보니깐 풀이 (시멘트 사이로 힘겹게 뚫고 나온 잡초) 너무 추워서 떨고 있잖아.
그래서 불쌍해서 추울까 봐 따뜻한 물을 준거야."
아이의 순수하고 따뜻하고 예쁜 마음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좀 전에 네가 중얼거리던데 뭐라고 한 거야?"
"어, 이제 내가 따뜻한 물을 부으면 안 추울 것이라고 했어, 그리고 매일 뜨거운 물을 주겠다고 했어"
나는 아이의 소중한 동심도 지켜 주면서 상처되지 않게 잘 설명했다.
"사람들은 추울 때 따뜻한 물을 먹으면 몸이 더워지는데 풀은 따뜻한 물을 주면 아플 수 있어. 따뜻한 물을 풀에게 주지 않아도 하나님은 풀에게 초록 스웨터를 입혀 주셨어. 그래서 걱정 안 해도 돼"
큰 아이의 비해서 느리고 덜 똘똘하다고 생각이 되어 나는 늘 작은 아이를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봤다.
저 아이가 이 험한 세상을 잘 살아낼 수 있을까?
이아이는 지금 30이 되었고 여전히 착하고 순수하다. 지금도 여전히 보면 안쓰럽다. 그렇지만 이 순수한 아이는 이웃을 배려하고 예의 바르며 여전히 자신의 이익보다는 상대를 앞서 생각하는 멋진 청년으로 자랐다.
수레국화가 작은 아이 어린 시절까지 소환해 내었다.
수레국화
"영어 이름은 센토 레아이며 (Centaurea cyanus L.) 독일어로는 Kornblume라고 한다. 수레국화의 꽃말
은 '행복'이다. 800년대에 빌헬름 1세의 아들이 어린 시절부터 파란 수레국화를 좋아했고 나중에 황제가
되어 수레국화를 독일 국화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황제의 생일이 되면 많은 도시에서 황제를
칭송하는 의미로 이 꽃을 따서 옷단에 달았다고 한다."
유럽 들판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잡초, 야생화, 수레국화!
농부들에게는 제초제를 뿌려서 없애야 할 성가신 잡초가 한 나라의 국화가 되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지금은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고 관상용으로 많이 키우고 있으며 꽃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은 더 많다고 한다.
수레국화 앞에서 나를 보다
야생초보다 더 여린 나를 보게 되었다. 그 모진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사명을 다 해내고 살아남아서 한 나라의 국화가 된 수레국화 앞에서 부끄러움이 올라왔다.
가끔 사람들은 우리 인생을 '잡초'로 표현한다. 어쩌면 요즈음 우리 인생이 잡초보다도 더 삶의 끈기가 약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정말 우리 인생이 잡초처럼 잘 견뎌낼 수 있고 어디서든지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는 존재인가? 어떤 악 조건하에서도 굴하지 않고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곳에서는 어떻게든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잡초 같은가? 그런 인생이었다면 삶을 잘 살아낸 것이 아닌가!.
나는 수레국화를 통해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영감을 얻게 되었고 앞으로 살아내야 할 삶에 대해 깊게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수레국화, 도종환 님의 '흔들리며 피는 꽃', 모두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이 그들의 뿌리를 땅에 내딛고 사는 이상 흔들리면서 살아가야 되는 존재임을 배웠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도 여지없이 땅에 발을 내딛고 살아가는 존재임으로 인생의 바람을 맞으면서 끊임없이 흔들리면서 살아가야 하는 생물의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바람을 피하려고 하기 보다는
바람이 부는 대로 내 몸과 마음도 함께
그 방향을 거스르지 말고 맡길 나이가 아닌가 싶다.
척박한 곳에서도 피워 나는 수레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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