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륵, 드르륵......."
재봉질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재봉을 배운 지 한 달이 되어가니깐 재봉 소리만 들어도 상대방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재봉의 속도를 낼 때와 늦추어야 할 때를 자동적으로 습득하게 된다.
초보자의 고뇌
초보자인 나의 경우는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재봉선을 정확하게 따라서 박음질하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나 옆에서 급행열차 지나가는듯한 재봉 소리를 내면 경쟁심이 생겨서 내 재봉 속도도 덩달아 빨라진다. 그러면 여지없이 박음선이 똑바로 안되거나 잘 못되어서 다시 뜯게 된다.
제일 하기 싫은 부분이 잘 못 박음질 된 곳을 다 뜯는 일이다. 나는 단순 노동을 잘 못한다. 콩나물 대가리를 다듬거나 마늘을 까라고 하면 괴롭다. 나도 모르게 신세 한탄이 나온다. 이런 나에게 뜯기를 하라니!
성가신 '뜯기'
선생님이 잘 못된 부분을 다시 뜯으라고 할 때 짜증이 먼저 올라온다. 그리고 한숨이 나온다. 손 바느질도 아니고 이중 박음질인 한 것을 다 뜯으라니! 눈도 침침해서 실과 천의 구분도 잘 안 가는데 다시 뜯다니!
귀찮아서 '그냥 하겠다고 떼(?) 써 보지만 선생님의 말씀을 거스르기 어려워 성질을 죽여 가며 잘못 재봉질된 부분을 뜯는다. 선생님은 '처음부터 제대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하신다.
돌이켜보니 정말 많이 뜯어내는 작업을 했다! 수선비가 비싼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또 뜯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초보 주제에 비싼 천을 사용했기 때문에 천 값을 생각해서라도 뜯어야 되는 이유가 있어서 눈물을 머금고 뜯기 시작한다.
특히 아래에 만든 가방이 여러 번 뜯은 가방이다. 내 생애 첫 대 작품이자 다시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한 작품이다. 그만큼 고생하고 시간도 오래 걸렸고 더 섬세한 바느질 작업이 필요했다. 나의 급한 성격 때문에 저 귀한 천은 무지 수난을 당했다.
바느질이 잘 못된 부분을 뜯으면서 곡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아이러니하게 그 절규의 곡소리는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깨달음
그렇지! 인생도 그렇지! 어렸을 때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 않은가? 부모가 자식이 잘못했을 때 안쓰러워서 귀여워서 훈계해야 할 시기를 놓치게 되면 아이는 잘 못된 버릇을 가지고 평생 살아가게 된다. 잘못된 것은 처음부터 바로 가르치지 않으면 인생은 천 쪼가리가 아니기 때문에 다시 되돌리기가 어렵다. 운동이든 악기든 모든지 처음 배우는 자세가 중요하지 않은가!
비록 '뜯기'가 지루하고 단순했지만 이 시간이 의외로 내 마음의 소리를 듣는 시간이었고, 복잡해진 머리를 쉬게 해주는 쉬는 시간이 되었다.
기회
'바쁠수록 쉬어 가라'는 말이 있다. 쉬는 것은 시간의 낭비가 아니라 지난 온 삶을 되돌아보고 충천하는 기회이다. 인생을 살다 뜻하지 않게 엎어지거나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는 '뜯기'를 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애써 재봉질한 것을 뜯는 것은 만든 입장에서는 허탈하고 짜증 나는 일이다. 뜯김을 당하는 천 입장에서는 바늘구멍을 또 내야 하는 아픔도 있다. 그러나 잘못된 부분을 뜯는 것은 온전한 작품으로 탄생하기 위한 과정이다. 귀찮다고 아깝다고 잘 못된 것을 그냥 지나쳐 버리면 나중에 더 큰 대공사가 기다린다.
공황장애
공황장애가 왔을 때가 그랬다!. 그전부터 증세들이 조금씩 보였는데 해야 할 일들만 눈에 들어와 '뜯는' 기회를 놓쳤다. 그 대가를 지금까지 치르고 있다. 잠시 지나가다 멈출 바람으로 생각했는데 그 바람은 내가 가던 길을 멈추고 나를 돌보기 시작했을 때 조금씩 잠잠해지고 있다.
나는 지금도 치료 중이다. 약물 치료는 감사하게 일찍 중단이 되었고 지금은 심리치료만 받고 있다. 상담사가 나의 어린 시절부터 '뜯는' 작업을 시작했을 때 그 당황스럼과 심리 저항은 거셌다.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염려도 컸지만 현재 나는 치유되어 있는 과정 중에 있다. 그리고 나는 매일 소망한다. 언젠가 내 삶에 다시 이런 경쾌한 소리를 들을 날을 기대하며 기도한다.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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