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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스페인 산티아고길을 걷다

산티아고 길위에 소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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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의 소확행

 

 젊지 않은 나이 50에 매일 20km 이상을 걷는다는 일은 인생의 적지 않은 큰 모험이었다. 그 먼 거리를 완주하게 만든 요인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산티아고 길을 마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매일 누리는 소소한 행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상의 즐거움은 숙소에 도착에 따뜻한 물로 샤워하기, 마트에 가서 요리할 재료 잔뜩 사 오기, 각 나라에서 온 순례객들과 교제하기 등이다. 그중에서 압도적인 표를 차지하는 소확행은 매일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과 빵이었다. 


 순례자의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

우리의 순례 일정은 보통 아침 8시 좀 넘어 시작한다. 다른 순례객들보다 출발이 늦은 편이다. 일찍 떠나는 사람은 새벽 6시부터 부지런히 길을 나선다. 머리에는 칠흑 같은 어두움을 물리쳐 줄 소형 렌턴이 장착된 밴드를 하고 길을 더듬으면서 찾아 떠난다.

 

길을 일찍 떠나는 이유는 저마다 다 다른데 일반적으로는 뜨거운 태양과 마주 보면서 걷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도 한 번은 저들과 같이 해가 떠오르기 전에 움직였다가 어둠에 익숙하지 않은 발걸음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적이 있어 진즉에 포기했다.

 

순례의 길에서 만큼은 조바심 내지 않고 '느림의 미학'을 생각하며 걷고 싶었다. 어쨌든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은 후 우리는 느긋하게 떠날 채비를 하고 길을 나선다. 2시간쯤 길을 걷다 보면 강렬한 태양이 우리를 열심히 따라오면서 괴롭힌다. 얼마 걷지 않아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만한 지점에 순례객을 기다리고 있는 방앗간이 있었으니, 카페였다. 멀리서 보니 사람들이 부쩍거리고 있고 가까이 갈수록 커피 향이 순례객들을 유혹한다. 


 

커피 한 잔에 누리는 소확생

산티아고 길을 걷는 중에 잠시 쉼을 가지고 마시는 커피 한 잔은 호사 중의 제일 큰 호사였고 소확행이었다.

 

스페인의 커피 값은 참 착하다. 고작 1.5유로에서 2유로 정도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이 2천 원에서 3천 원이 미쳐 안 되는 가격이다. 물론 우리나라 같이 인테리어가 화려하지도 않고 고급스럽지 않다. 하지만, 작고 소박하며 정감이 가는 카페다.

 

찐한 에스프레소 커피에 따뜻한 우유와 설탕을 듬뿍 넣어서 마시는 달달한 커피 한 잔은 쌓였던 피로가 단숨에 풀릴 정도로 그 위력이 강력했다. 스페인 커피에는 진심이 느껴진다. 커피는 찐하지만 강하지 않고 부드러웠으며 갓 기계에서 뽑아내거나 드립 한 커피의 향은 날아다니는 공기까지 물들게 했다.

 

심지어는 내 영혼까지 향긋함으로 가득 배게 만들었다. 거기다 카페에서 파는 작은 빵 한 조각과 함께 마시는 커피맛은 허기까지 달래줘 더 바랄 것이 없을 만큼 행복했다. 비교적 지출에 엄격한 나였지만, 커피만큼은 사치와 호사를 누리는데 기꺼이 허락했다.


에피소드

이날도 태양이 끈질기게 나의 등을 달구면서 따라오더니 어느 순간 내 앞에 정면으로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마치 태양이 나를 향해 "너, 이래도 걷을 거야?"라고 말을 건네는 거 같았다.

 

강렬한 태양열이 모자와 옷 속까지 뚫고 들어와 온몸을 후끈거리게 만들었다. 그 열기가 가던 길을 주저앉게 만들 시점에 커피 향이 멀리서 바람을 타고 은은하게 퍼져 내 온 감각을 자극했다. 순간 힘이 솟아오르더니 경보 선수가 되어 카페 겸 바(Bar)를 운영하는 가게를 향해 지그재그로 달려갔다.

 

나: 알로(스페인어로 안녕)~~ 커피 두 잔과 우유 주세요~

카페주인: (잠시 후, 참하게 내 앞에) 커피 두 잔과 맥주 한 잔을 놓는다.

나: 맥주는 왜 주는데?

카페주인: 네가 맥주 달라고 했잖아?

나: (뭐래! 기운도 없는데 두 번 말하게 하고!) 맥주 말고 우유 달라고!

카페주인: 그래, 여기 맥주 줬잖아!

나: 아~~~~~~~~~~~ 진심으로 이 남자의 수염을 다 뜯어 버리고 싶었다. 알파벳 하나하나 강조하면서 말했다. m.i.l.k! milk(미옄~~~ 최대한 미역 발음과 비슷한 소리를 내었다) 달라고!!!

카페주인: 아! 우유 달라고! 난 맥주 (beer 비어)로 알아 들었지 ㅋㅋ


 스페인에서는 스타벅스가 자리 잡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들의 공장화된 저급한 커피맛이 스페인의 짙고 깊은 맛과 향을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즘도 가끔 남편과 나는 커피 한 잔 할 때면 스페인에서 마셨던 그 맛과 정서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한다. 일회용 컵으로 주는 것이 일반화된 요즈음,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커피잔에 받쳐 내오는 스페인 작은 마을의 카페에서 마셨던 커피는 정성이었고 순례객을 향한 사랑이었음이 느껴진다. 오늘도 남편과 커피를 마시면서 함께 소확행을 누렸던 추억을 소환해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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