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16 -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걷다] - 스위스 할머니가 걷는 이유
스위스 할머니가 걷는 이유
Lorca에서 알베르게 주인의 따뜻한 환대는 걷느라 지친 우리 몸과 마음에게 평안한 안식처를 마련해 주었다. 4명이 머무는 방에 우리 외에는 다른 순례자는 없었다. 그동안 적게는 한 방에 열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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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카(Lorca)에서 알베르게 쥔장의 따스한 환대와 스위스 할머니의 인연을 아쉬움으로 남기고 길을 찾아 나선다. 하루 더 머물면서 여유를 갖고 주변을 더 관찰하고 싶지만 대부분의 알베르게는 아프지 않은 한 하루 이상 머물지 못하게 한다. 어쩌면 '그들의 인심이 사납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다른 순례객들을 위한 배려이다. 나그네를 위한 알베르게는 충분하지 않으며 늦게 도착한 순례자들은 야외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한다. 돌바닥에 침낭을 깔아 잠자리를 꾸미고 온기는 모아진 별빛들이 빛을 바라면서 추위에 떠는 나그네 하룻밤을 따스하게 만들어준다.
Lorca를 걸쳐 Navarrete까지 이끄는 여정
Lorca를 떠나 Villamayor de Monjardin - Los Arcos - Viana -를 걸쳐 나흘째에 되던 날에 Navarrete에 도착했다. Navarrete에 이르기 전에 Logrono 대도시를 스쳐 지나갔다. 한적하고 목가적인 풍경만 보다 거대하고 삭막한 회색빛 도시를 자나치려니 마음까지 색깔이 바뀌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더불어 나의 팔팔한 오감이 모든 사물의 확연한 차이를 감지한다. 카페, 풍경, 사람, 성당 등 그동안 시골을 지나치면서 눈여겨봤던 모습들하고는 전혀 다름을 인식한다.
북부 스페인 마을의 모습은 대부분 비슷하다. 소실점 끝에 마을의 형태가 보이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부분은 마을 높은 곳에 위치한 성당의 종탑이다. 고래적부터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은 마을을 형성할 때 성당을 하늘과 가깝게 맞닿은 곳에 건축했다고 한다. 멀리서 보니 먼저 앞선 순례자들이 마을 끝, 소실점 안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사라진다. 그들이 사라진 지점에 이르니 마을 진입로가 나타나고 그 주변으로 집들과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순례객들의 관심을 끈다.
그런던 중 작은 성당을 지나가다 내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을 발견하고 빛의 속도로 가던 길을 멈춰 뒤걸음질하였다.
성당 입구에 네덜란드의 빛의 화가로 알려진 유명한 렘브란트, '탕자의 귀향' 그림이 광고판에 놓여 있는 게 아닌가! 비록 포스터였지만 평소에 좋아하던 그림이어서 그런지 더 관심을 가지고 주의하여 살펴보게 된다. 찬찬히 그림을 바라보며 그 상황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탕자의 귀향'
작품소개
탕자의 귀향은 1669년경 유화 물감으로 그린 렘브란트 말년의 대표적인 대작이다. 가로 1.8m, 세로 2.4m 높이이며, 성경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그렸다. 현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작품 해석
이 작품은 렘브란트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투사했다. 잘 나가던 호사스럽고 방탕했던 그의 젊은 시절의 운은 다 끝나고, 그의 말년은 고난이 일상이 되어 렘브란트가 살아 숨 쉬는 내내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그가 소유한 재산, 명예, 돈, 가족, 건강 등을 모두 잃었다. 그의 말년은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 칠 수록 블랙홀처럼 끝도 없이 죽을 때까지 빨려 들어갔다.
홍등가에서 저물지 않은 나날들을 보내며 입었던 화려한 의복과 신발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비루한 옷과 헐벗고 낡아빠진 샌들을 신은 채 아버지 앞에 겸손히 몸을 낮추면서 그의 자비를 구하는 작은 아들의 모습은 곧 렘브란트, 자신이었음을 깨닫는다. 성경 속의 인물, '탕자인 둘째 아들'과 동일시가 일어나면서 자신의 실존을 보게 된 것이다. 렘브란트는 모두 잃고 보니, 평생 추구하고 즐기던 것들이 헛 된 것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작품 해석에 보면 아버지의 초점 없는 눈은 매일 집 나간 자식을 생각하고 밤새 그리워하며 흘린 눈물이 짓무르어 멀게 되었다고 한다.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 진하게 가슴속 깊이 파고든다.
개인적으로 '탕자의 귀향'의 백미는 아버지의 손이 아닐까 싶다! 오른쪽과 왼쪽 손의 사이즈가 다르다. 오른손은 부드러운 여성으로 표현되어 있고, 왼손은 강인한 남성의 것으로 묘사되었다. 이는 자애로운 어머니와 강인한 아버지의 사랑을 나타내며, 그 의미는 치유와 용서이다.
마치며...
먼 이국땅 스페인 순례의 길에서 뜻하지 않게 마주친 그림 한 장이 나에게 잔잔한 여운을 준다.
세계적인 영성학자 헨리 나우웬은 '탕자의 귀향'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교수직을 사임한 후 캐나다 장애인 공동체, 라르쉬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 들어가 남은 생애를 보냈다.
6년 전, '탕자의 귀향' 앞에서 렘브란트의 삶과 헨리 나우웬의 결단을 떠올리면서 나는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했던 기억이 올라온다. 되돌아보니 그때 품었던 마음이 이제 하나씩 실행에 옮겨지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사랑과 용서가 있을 때 치유가 일어남을 '탕자의 귀향'이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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