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50대 중반과 초반 나이에 산티아고 길을 걸었었다. 사전 준비와 충분한 지식 없이 2 주 만에 야반도주하듯이 후다닥 짐을 꾸려 순례의 길을 떠났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용감하면서도 무모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때 그렇게 가지 않았다면 우리가 생전에 그 길을 걸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대에 역행하는 여행
산티아고 길을 걷는다는 것은 문명의 변화의 속도에 역행하는 일이다. 로켓으로 달나라, 화성까지 가는 시대에 걸어서 이역만리 길을 간다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 아날로그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빛의 속도로 빠르게 변화되는 시대에 그 빛을 좇아가면서 살고 있다. 그럼에도 이 느린 행보를 하겠다고 세계에서 많은 순례객들이 모여드는 것은 아날로그 시대에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우리는 산티아고길이 시작되는 프랑스 생장 순례자 사무실에서 알베르게 목록이 적힌 종이와 순례자 여권만 받아 가지고 낯선, 가보지 않은 길을 오로지 순례를 상징하는 가리비 모양과 화살표만 보고 길과 숙소를 찾아 아날로그 방식으로 떠났다.
길을 안내하는 다양한 이정표들
목적지인 산티아고에 가까워지면서 이정표와 함께 남은 거리를 표시한 대리석 표석이 순례의 길을 가리키고 있다. 이때까진 본 표석 중에 제일 멀끔하게 잘 생겼다~~~
숨겨 놓은 보물을 찾듯이 이정표를 찾고 헤맬 때도 있다. 때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화살표를 발견한다. 풀이 더 무성했다면 찾기가 쉽지 않았을 이정표이다.
때로는 인적이 드문 귀퉁이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이정표를 발견한다. 시멘트로 만들어진 표석 위에 돌탑을 쌓아 놓은 흔적이 보인다. 홀로 존재감도 없이 귀퉁이를 지키고 있는 그에게는 순례자들이 두고 간 돌들이 외로움을 덜 느끼게 해 줄 것 같아 보인다. 강도가 나타날 것 같은 으쓱한 길을 홀로 걸었더라면 뒷골이 무지 당겼을 것 같은 길이다.
도심 한 복판 길바닥에서 시선을 끌고 있는 이정표를 발견한다. 그냥 지나칠 수 없지! 가던 길을 멈추고 남편과 함께 이정표 위에서 기념 샀! 한 컷!
밋밋하고 지루할 수 있는 드넓은 대지에서 만나는 이정표! 이 돌들이 한 번에 다 모이지는 않았겠지! 순례자들이 지나가면서 하나씩 던져 놓은 돌들이 모여 길을 안내해 준다! 크고 널찍한 이정표를 만나니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주는 느낌을 받았다. 나도 기꺼이 주변에서 발견한 작은 돌 하나 투척하고 지나갔다.
이 아이를 찾은 것은 기적과도 같았다. 오로지 이정표만 보면서 길을 찾아가는 우리에게는 이정표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는 것과 같다고 할까? 이정표를 찾지 못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헤매고 있을 때 이 노란 화살표를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노란 화살표가 아닌 산티아고 상징 아이콘인 가리비 모양이 우리의 길을 안내해 주고 반겨준다. 나만의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워서 그런가?' 표석이 쓸쓸해 보인다.
도심 속에서 마주친 순례의 길을 걷고 있는 동상~~~ 때로는 동상의 방향이 순례자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 가르쳐 주는 이정표 역할도 한다.
노란색 이정표에 익숙한 내 눈에 발견한 색다른 표지판은 순례의 길을 멈추게 한다. 초록 바탕의 검은색 화살표! 자세히 보니 길가에 세워져 있는 쓰레기통이다. 누군가가 센스(?) 있게 쓰레기통 위에 순례자의 길을 표시해 놓았다. 이왕이면 미적인 부분도 고려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이정표이다.
도심지에서 화살표를 발견하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다. 숨겨진 보물처럼 찬찬히,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상점 로고처럼 보인 이정표 앞에 한 참 서 있었다. 처음에는 간판 중 하나인줄 알았다. 방향을 보면 벽을 뚫고 나가야 한다 ㅠㅠ
화살표 방향이 서로 다르다. 하늘색 이정표는 오른쪽, 희미하게 보이는 노란색 이정표의 방향은 왼쪽을 가리키고 있다. 어디로 갈까? 이참에 남편과 찢어져 볼까나?

인생은 가야 할 방향이 정해지면 속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50이 훌쩍 넘은 나이에 깨달았다. 방향만 잊지 않으면 언제 가는 목적지에 이르게 된다. 그러면에서 산티아고 순례의 길은 '느림의 미학'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인생의 길을 처음 나서는 우리에게도 목적지를 안내하는 분명한 이정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삶의 이정표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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