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美學)이란 자연, 인생이나 예술 작품이 가진 아름다움의 본질이나 형태를 연구하는 학문
(철학) 자연이나 인간의 생각 따위를 감각적 또는 감정적 효과의 면에서 매기는 가치
(출처 다음 국어사전)
'기다림의 미학'을 다음 국어사전이 정의해 놓은 의미대로 풀어내려면 어떻게 연구해야 되고 어느 부분에서 가치를 찾아야 할까? 요즈음 단어 뒤에 미학이라는 용어를 잘 갔다 붙인다. 다들 진정한 뜻을 알고 사용하는 것일까? 심지어는 '디스코의 미학'이라는 글도 본 적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국어가 참 어렵다고 느낀다. 분명 영어도 아닌 우리나라 말인데 어떤 문장은 이해가 안 되어 글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멈추어 서서 수도 없이 읽고 또 읽는다. 나이가 들어 이해력이 떨어진 것인지, 원래 문장 해석 능력이 부족한 것인지! 하여간 한글과 한국말이 때때로 낯설고 우주어 같다고 생각되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서정주 님의 '국화옆에서'
고등학교 시절일까? 국어 시험을 위해서 기계적으로 달달 외운 시 한 편이 생각된다. 시구가 가진 의미나 아름다움보다는 시험이라는 당면 과제에 불이 떨어져 의미 없이 읽힌 시의 한 소절이, '기다림' 단어 앞에서 불쑥 튀어나온다. 미당 서정주 님의 '국화 옆에서'이다. 그 시는 첫 구절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로 시작된다. 전국민적으로 많이 알려진 유명한 시구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첫 소절이 시의 제목인 줄 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든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필라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학교 다닐 때 국어 선생님이 시를 낱낱이 쪼개고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이 아주 못마땅했다. 선생님이 단어 하나하나, 시의 한 구절, 한 구절 해석 할 때마다 삐딱한 마음이 올라왔다.'지가 어떻게 알아!!! 자기가 국화꽃이야? 물어봤나! 국화꽃한테!' 그의 해석이 오히려 시의 본연의 아름다움을 뺏었았으며 관조할 기회를 놓치게 만들었다.
시의 감상은 그림처럼 대상과 한 밭 떨어져 인상을 팍 쓰면서 한쪽 손을 턱에 괴고 고개를 팍 떨군 채 음미해야 할 대상이다. 나는 모든 창작품은 오감으로 감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해석은 독자의 몫이다. 물론 창작자의 의도를 알고 작품을 대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파헤쳐 놓으면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을 관찰하거나 비출 수 없다.
나의 한 송이의 국화꽃
나에게 '한 송이의 국화꽃'은 내가 원하고 바라는 일이다. '그 꽃을 피우기 위해서'의 의미는 여태껏 내가 소망하던 일들을 위해 노력한 나의 행위들을 뜻한다. 한 송이의 새 생명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에는 소쩍새, 여름에는 천둥과 먹구름, 가을에는 무서리, 잠 못 이루는 밤... 전 우주가 동원된다. 그 아름다운 결실은 견딤으로 보상받는다. 인생의 결실도 다들 바 없이 견디고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이 견디기 어려운 것은 기다림의 끝이 언제까지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기다림의 말에는 초조, 안절부절, 답답함, 무게감, 스트레스 등 무겁고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단어들이 내포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런다. "어차피 기다리는 거 즐기면서 느긋한 마음을 가지라"라고 한다. 정작 오랜 기다림 속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말 들이 고맙지도 않고 도움도 안 되며 반말심만 생기게 만든다. 상대를 위한다고 하는 말이 때로는 독이 되어 더 힘들게 하고 상처를 준다. 제발 주변 사람들은 그 입 좀 다물라! 부탁이니 어설픈 위로의 말도 삼가자!
기다림의 미학
기다림이 고통이 아닌 미학으로 승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기다림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마음이나 언행, 행동을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깨달으면서 내적으로 성장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무언가 바라는 일이 쉽게 이루어지면 인간은 자기가 잘나서 된 줄 착각하는 존재이다. 돼지비계처럼 교만의 비계덩어리가 잔뜩 인격 안에 비둔하게 껴 겸손하고는 먼 이별을 한다. 하지만 오랜 기다림으로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은 마음이 가난해질 대로 낮아지면서 자신의 실존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되며 겸손을 배우게 된다.
요셉은 성경 속에 나오는 인물이다. 형들의 모함에 의해 이집트에 팔려 가고, 설상가상으로 성추행범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던 중 옥에 갇힌 왕의 신하의 꿈을 해몽해 준다. 그 해몽대로 그는 감옥에서 풀려나고 요셉을 옥에서 꺼내 줄 것을 약속하지만 까마득하게 잊는다. 언제 자신을 불러 줄지 모르는 그 기다림은 간절한 애절함, 오매불망, 좌절,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그 사람에 대한 원망,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감옥에서 자신이 맡은 일상을 성실히 해내면서 견뎌내었다. 드디어 2년 만에 억울한 누명을 벗고 왕의 앞에 섰으며 왕의 꿈을 해석해 주고 총리로 임명받았다. 결국 그의 기다림은 자기 계발하는 시간이 되었다.
혜민 스님은 오래전에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 책을 집필해서 대단한 반응을 일으켰다. 나는 기다림이 '멈추어 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다리면서 그전에는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시야를 뚫고 들어온다. 일상의 간단한 예를 들어, 얼마 전에 버스를 오랫동안 기다리면서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버스 정류장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 저 건너편에 붕어빵 파고 있네!", "내가 그토록 찾았던 수선 가게가 바로 코앞에 있네!"
기다림은 멍 때리고 가만히 죽치고 있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를 창의적으로 만드어 주는 기회와 경험을 제공해 준다.
어떻게 기다릴 것인가?
모든 기다림이 우리가 기대하는 훈훈한 결과를 가지고 오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그 기다림이 기약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절망스럽다. 때로는 포기하고 다른 방향으로 바꾸어야 할 때가 온다. 그럼에도 우리가 기다림 속에 가져야 할 태도는 분명히 있다. 안절부절못하고 짜증 내고, 불평을 늘어놓으면 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이 과다 분비가 되어 만성피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어차피 내 의지대로 뜻대로 계획대로 안되고 기다려야 하는 일이라면 자신을 그만 괴롭히자!. 어떤 상황에서도 좋은 점과 나쁜 점이 함께 있다고 믿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더불어 이 견디는 시간이 나를 감사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해주는 기회라는 것을 잊지 말자.
현실은 노답이지만 억지로라도 예쁜 노트 한 권을 펼쳐 놓고 매일 감사일기를 쓰자. 감사함을 기억하고 적다 보면 기분이 나아지면서 더 감사하는 것들을 찾게 된다. 이때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우울증 치료제)과 도파민(동기부여효과) 호르몬이 나온다. 특히 뇌의 시상하부( 몸 안의 대사를 조절함)가 활성화되어 마음이 평안해지면서 가뿐 호흡이 좋아지고 수면에도 도움을 준다.
나는 이제 출항 준비를 다 끝내고 비자를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비자를 진행해야 할 사람이 연락이 안 온다.ㅠㅠ 비자 수속 기간이 4~6개월 정도 된다고 하는데, 아직 우리 서류는 들어가지도 않았다. 속이 터진다. 이리 생각하고 저리 짱구를 돌려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 내가 쓴 글을 나에게 적용하면서 기다려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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