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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에서의 깨달음

개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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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4 - [일상에서 만나는 심리학] - 조급증

 

조급증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 주말마다 가평에 있는 주말농장에 가서 농사체험을 했다. 원래 의도는 아스팔트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흙을 발에 묻히게 해주고 싶었다. 더불

hasim2002.tistory.com

오늘 볼일이 있어 남편과 외출하고 돌아오는 중에 은행에 가야 하는 것을 깜빡했다. 차선을 1차선으로 바꾸어야 해서 깜빡이를 넣고 서서히 차의 머리를 내밀려고 하는데, 뒤에서 요란한 클랙션이 울리더니 우리 앞에 배달용 오토바이가 가던 길을 멈춰 섰다. 헬멧을 쓴 남자가, 약 40대 중반 정도 되었을까?, 고개를 거칠게 획 돌려 우리를 째려본다. 남편이 먼저 가라고 손짓을 하는데 고성을 지르면서 욕을 해댄다. 단단한 자동차 유리창 문을 뚫고 아가리 파이터의 개소리 잡소리가 내 귀를 때린다. 

 

"개 xx, xxxx"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조폭 같은 험악한 얼굴로 몇 초 더 째려보고  굉음과 함께 휑하고 사라졌다. 너무 놀랐고 당황스럽고 심장까지 벌렁거렸다. 머리가 하얗게 된 사람한테 젊은 사람이 신랄하게 육두문자를 날리다니! 이제 이 나라는 더 이상 동방예의지국이 아니다! 남편이 그런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면서 태연하게 이야기한다.

 

"사는 게 많이 힘든가 보다!"라고 남편이 말하는데, 잠깐 그 아가리 파이터로 인해 혼이 나간 내 정신이 되돌아오면서 남편을 쳐다봤다. 정상적이지 않는 남편의 반응을 보면서 '너무 충격을 받아 실성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유튜브로 강의를 듣는데, 강사가 하는 말이 "현재 대한민국 국민들의 자존심이 엄청 세졌다"라고 한다. "조그만 건드려도 분노를 폭발하고 못 참는다" 했는데, 실제 길 위에서 당하고 나니 그 말에 수긍이 간다. 2년 동안 코로나시대를 겪으면서 일상이 바뀌고 사람들의 마음은 더 척박해졌다고 하는데 꼭 그런 것만 같지는 않다. 나는 이러한 사회적 변화가 각박한 삶의 영향도 있지만 한국인이 고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조급증과 억압된 감정의 폭발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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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기본의미) 남에게 굽히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나 품위를 지키려는 마음     

또는 스스로의 가치나 품위를 높이려는 마음                                                                                  (출처 다음국어사전)


진정한 의미의 자존심은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당당하면서 품위를 가지고 지키는 마음인데, 그 오토바이 라이더가 보여준 행동은 품위는 하늘로 증발해 버린 '개 자존심'이었다. 처음부터 그 사람도 험악한 사람은 아니었겠지! 삶의 고단함이 사람을 각박하고 날카롭게 만들었겠지!라고 이해해야 내 마음이 상하지 않을 것 같다.


오늘 오전에 있었던 볼일은 태국에서 오랜 시간 선교사로 일 한 분과 만남을 가졌다. 그분 하시는 말씀이,

 

"한국에 오랜만에 들어왔는데 고국이 너무 무섭다. 문화적응이 안 되어 어리바리한데 우리를 자꾸 밀쳐대고 뭐라고 한다. 아침에도 지하철역에서 키오스크 이용이 익숙하지 않아 헤매는데, 뒤에서 짜증 내고, 숫자(18) 소리를 내고, 깊은 한 숨소리가 들려서 힘들었다. 태국에 사는 게 편하다"

 

나와 남편도 2년의 뉴질랜드 생활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비슷한 경험들을 하면서 그분과 똑같이 '무섭고 살벌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 지경까지 간 국민들의 정서가 걱정스러우면서 가슴 밑바닥부터 끓어오르는 한숨이 탄식이 되어 나온다.


작년 여름 8월 한 달을 태국 남부에서 머무르면서 우리가 앞으로 머물 땅에 대해 정탐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태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을 통해서 태국의 문화, 상황과 정보 등을 듣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지인이 빌려준 차로 남부 일대를 여행 겸 정탐을 떠났다.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의 운전석과 도로를 달리면서 남편은 여러 번 클랙슨을 때렸다.

 

여행 후에 남편의 행동에 대해 태국에 거주하는 한국 지인은 경악을 금치 못한 표정을 보였다.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행동이었다"라고 했다. "태국 사람들은 절대 서두르지 않으며 길에서 클랙션을 울리지 않고, 또 재촉하거나 자존심을 건드리면 피를 보는 민족성을 가졌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나는 '길거리에서 객사로 그토록 그리던 주님을 뵐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내장이 서늘해지는 경험을 가졌다.


지금, 전 세계는 한류 열풍으로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해 우리의 문화를 배우고 싶어 하는 나라가 되었다. 더불어 '한국이 얼마나 잘 사는지' 한국인만 인식 못하는 아이러니한 시대를 살고 있다. 빛의 속도로 발전한 경제성장은 세계사 유래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인으로서 자긍심, 자부심, 자존심을 가지고 살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다. 하지만, 이 단어들 앞에 '똥', '개'가 더 붙여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나라가 대대적인 캠페인을 통해 국민들의 마음관리에 대해 신경 써야 한다. 이제는 경제적 부는 이 정도 이루어 놓았으니, 부디 조급증을 내려놓고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도록 애쓰고 힘쓸 때가 아닌가 싶다.

 

 

느림의 대표 아이콘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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