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 첫 입시에 실패하고 일 년 재수한 후 입학했다. 의외로 재수할 때가 내 인생 중에 제일 자유로운 때가 아닌가 싶다. 그전까지 나는 자의로 내가 원하는 교육 기관을 선택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제도권 아래 있는 것을 사무치게 싫어해서 어떻게든 이 나라를 떠나려고 했는데,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지 않아 이 땅에 주저앉은 것이 한탄스러울 뿐이었다. '나 때는' 외국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어떻게 하면 외국에 가서 살 수 있을까? 하고 매일 짱구를 돌리다가 생각해 낸 방법은 대학을 가는 거였다. 일단 대학을 가서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 함께 유학을 떠나거나 주재원으로 한국을 벗어나길 소원하는 마음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았다. 아~~~ 그런데 공부가 하기 싫다. 내 삶의 목표를 이루려면 공부를 해야 하는데 마음이 복잡하고 집안 정서가 불안정하니 집중이 안된다.
재수할 경제 형편과 실력이 안 되었는데 나를 특별히 귀하게 여긴 생물 선생님이 따로 불러서 '꼭 대학에 갈 것'을 신신당부하셨다. 내가 자신 없어하자 직접 어머니하고 통화하셔서 어머니를 설득해 재수하게 도와주셨다. 그 당시에도 지금처럼 대학 등록금보다 재수하는 비용이 많이 들었다. 지천명이 훌쩍 넘은 내 나이, 지금도 어려운 형편에 학원비를 기꺼이 지불해 주신 어머니와 재수하도록 설득해 주신 선생님, 두 분의 은혜를 잊지 못한다. 나는 한결같고 일관성이 있는 사람이다. 재수했다고 해서 내 공부 패턴이 달라지지 않았고 어렵게 시작한 재수임에도 평소대로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 어쨌든 별 실력도 없는 내가 대학에 운 좋게 들어간 것은 대한민국 교육 제도의 허점이 많다는 증거이다.
대학 들어가서는 전공이 맞지 않아 4년 내내 공부에는 손을 놓고 매일 방황하고 우울한 대학생활을 보냈다. 3학년말이 되자 걱정이 쓰나미처럼 덮쳐 미래에 대한 불안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나 때는 말이다, '대학 3 학년 때 배우자를 만나야 된다'는 말들이 돌았고, '대학 4학년은 남자들에게는 형수감 나이여서 쳐다도 안 본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내가 대학에 들어온 이유는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 시집을 잘 가서 외쿡 가서 사는 건데.... 학점은 내 절친과 번갈아가면서 밑바닥 순위를 서로 털끝만치 양보도 없이 1, 2위를 번갈아 가면서 하고 있던 중이었다. 공부를 못하면 얼굴이라도 받쳐줘야 되는데 그것도 안되고, 아니면 집안이라도 빵빵해야 되는데 그건 더더욱 아니고! 더군다나 별 신통한 재주도 없고! 거기다 여대를 다니고 있었으니 남자를 만날 기회는 사막 한가운데서 인적을 찾는 것만큼 어렵고!
4학년 어느 날 같은 교회를 다니는 고3 담임이었던 선생님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선생님: (흥분된 어조로) 00야, 내가 21세기에 한 명 나올까말까한 남자를 발견했어! 니 주제에 만나기 어려운 사람이야!
나: (속으로 또 오버하시네) 아~~ 네, 몇 살이고 뭐하는 사람인데요?
선생님: 30살인데 앳되어 보여! 우리 학교 00과목 강사로 온 사람이야.
(뭐래!!! 이 꽃다운 20대 청춘에 어디서 30대 늙은이를 들이대시고! 더군다나 전공을 들어보니 외쿡에 나가 살기에는 진즉에 글러 먹었고! 패스!)
나: 제 주제에는 과분한 분 같으시니 다른 사람 소개 시켜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선생님: (버럭 화를 내시더니) 너는 어떻게 만나 보지도 않고 거절을 하니!!!! 일단 날짜와 장소 정했으니 나와!
너무 황당했다. 가스라이팅이다! 하지만 스승의 후환이 두려워 약속한 날에 동생 원피스와 구두를 빌려 신고 나갔다. 조금 걷자마자 신발 사이즈가 맞지 않아 뒤꿈치가 훌러덩 까지고 거기다 한 수 더 떠 헐거워진 스타킹은 한없이 주르륵주르륵 흘러내린다. 길을 걸으면서 연신 주접스럽게 흘러내리는 스타킹을 양쪽 번갈아 스커트 위로 올리고, 거기다 불행이 겹쳐 까진 뒤꿈치가 신발에 닿으면 아파 절뚝거리면서 약속한 장소에 나타 했다. 이미 내 마음은 시베리아 벌판이었고, 짜증이 많이 난 상태였다.
카페에 들어서니 선생님 맞은 편에 21세기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금테 안경을 낀 남자가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반긴다. 뭘 보고 앳되다는 것인지!!!! 지 나이 같아 보이는데!!!! 선생님이 우리를 소개하고 자리를 뜨신다. 그는 어색했는지 이것저것 나에게 묻는데 설렁설렁 대답했다. 내 스타일도 아니고 더군다나 그의 미래의 직업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재. 수. 없. 다' 생각이 밀물이 되어 내 마음을 가득 채운다.
그와 헤어진 후 집에 도착하고 잠시 후 성질 급하신 스승은 바로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선생님: 어때? 너무 괜찮지! 너랑 잘 어울리더라~~
나: 재수 없어요!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
선생님: 너는 사람을 한 번 보고 그렇게 평가할 수 있니! 적어도 세 번은 만나봐!
학교 다닐 때 공부는 못해도 말썽 안 부리고 순종하고 심성이 착해서 선생님들께 사랑받은 나! 스승의 말씀에 거역하지 못하고 명령에 따라 세 번 만나기로 결정했다. 두 번째 만남은 첫 번째보다 편하게 느껴졌다. 왜냐면 내가 평소에 즐겨 입는 옷을 입었기 때문에 마음이 편해서 그런 거 같았다. 나중에 남편이 이야기해 주는데 '자기는 그때 내가 캐주얼 한 차림으로 나타나서 충격받았단다'. 어쨌든 약속대로 세 번째 만남을 가진 날, 이 남자가 자신의 미래의 대한 계획을 말하는데 내 귀가 토끼 귀처럼 커졌다. 독일로 유학을 갈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 독일어 공부 중이며, 먼저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는 선배가 유학하면 도와주겠다고 했단다. 뭐시라! 유학을 간다고! 아~~~~ 드디어 나의 꿈을 이루어 줄 남자를 만나다니!!!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그의 집안의 재촉에 못 이겨 꽃다운 나이에 놀아 보지도 못하고 서둘러 결혼을 했지만 억울하지 않았다. 그토록 원하던 이 나라를 뜰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매일 오매불망 독일로 유학 갈 날만 기다리는데 시댁 어른들이 "무슨 돈으로 유학 가냐"라고 하시면서 나무라신다. 그 기세에 눌려 남편은 조용히 꿈의 날개를 나와 상의도 없이 접었다.
명백한 사기 결혼이었다. 막내아들이 혼자 자취하는 것이 안쓰러운 어른들은 얼른 아들을 안정된 가정을 이루게 해주고 싶어 결혼을 서두른 것이었다. 유학을 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편에게 더 실망했던 것은 남자가 욕망을 품었으면 어떤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밀고 나가야 되는데 그는 자신의 꿈을 어른들의 반대에 쉽게 내려놓았다. 순진한 20대에 유학이라는 꾀임에 넘어가 얼떨결에 사기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21세기에 나올까 말까 한 남자와 가끔 억울해 하면서 여직도 이 땅을 못 떠나고 30년째 함께 티격태격하면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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