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 첫 과가 아직도 기억난다.
"철수야 안녕"
"영희야 안녕"
나의 절친은 대학 1학년때 같은 과였던 영희라는 이름을 가진 속초 촌녀였다. 대학 신입 오리엔테이션 때 한 조가 되어 친해지게 된 계기로 30년이 훌쩍 넘었어도 여직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유일한 대학 동창이다.
며칠 전 늦은 밤에 카톡이 왔다.
영희: 주무셔?
나: 아뇨~ 잘 지내?
영희: 난 그럭저럭. 넌 어찌 지내? 준비는 잘하고 있고?
나: 준비는 뭘~~~~(생략) 너의 딸들의 소금빵이 그립구나!
영희: 좀 보내줄까?
영희는 딸이 둘 있다. 혼자 힘으로 딸내미들을 독립적으로 아주 잘 키워내었다. 두 딸들은 부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아르바이트해 가면서 모은 돈으로 작은 디저트 겸 빵집 카페를 오픈했다. 일주일에 4일만 집중적으로 작업하고 나머지 3일은 재충전하는 시간을 갖는 매우 신세대 다운 경영 방식을 가지고 일한다.
허름한 아파트를 딸내미가 아주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직접 전문가 뺨치게 리모델링했다. 집안에는 예쁜 크고 작은 병들 안에 담긴 온갖 종류의 초록 수중 식물들이 뿜어내는 초록향기로 가득 차 있다. 영희는 초록 숲으로 꾸민 집에서 두 딸과 도란도란 살고 있었다. 오랜 세월 사귄 친구였지만 그녀의 취향이 이렇게 조신조신한 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지난 1월에 영희의 집에 놀러 갔을 때 딸들이 만든 케이크를 나에게 맛 보였다. 슈가 파우더가 온통 하얗게 덮고 있는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보는 순간 너무 예뻐서 탄성이 나왔다. 입으로 직진하기 전에 먼저 눈으로 감상하는 호강을 실컷 누렸다. 그다음 내놓은 빵이 '소금빵'이었다. 개인적으로 담백한 빵을 좋아한다. 예전부터 소금빵을 사랑했다. 하지만 비싸서 자주 사 먹지 못했는데 아~~ 내 앞에 놓인 최애빵을 보니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어제 친구가 우체국이라고 전화가 왔다. "냉동실에 모아둔 빵들을 보내려고 하는데 얼음팩이 없어 대신 얼린 옥수수와 떡을 넣었다"라고 한다. "미안하다"고 하는데 정말 기발한 아이디였다 ㅋㅋ 더군다나 '옥수수 귀신'인 나에게는 미안할 일이 전혀 아니다.

우체국 카톡 알림이 오고 현관문을 열어보니 문 뒤에 얌전히 택배 박스가 놓여 있다. 보물이 가득 든 상자였다~ 열어 보니 옥수수, 떡, 베이글, 에그 타르트, 소금빵 등이 조란조란, 오손도손 누워있었다~
보이는 아이템보다 숨겨진 정이 택배 상자 깊숙이 안에 풍성이 들어 있었다. 남편과 열심히 냉동실로 옮겼다. 한 동안 먹을 간식거리를 쟁여 놓으니 부자가 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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