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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에서의 깨달음

내 친구 영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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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포도주는 오래된 것일수록 좋다고 한다. 요즈음 같이 인스턴트 관계를 맺는 현대인들에게는 참 낯선 말이 아닐까 싶다. 대학 동창인 절친 영희는 자주 연락하는 사이가 아니다. 심지어는 몇 년 만에 한 번 연락이 닿은 적도 있다. 어느 해는 서로의 생사 정도만 확인하고 지내기도 했다.


2023.03.07 - [소소한 일상에서의 깨달음] - 내 친구 영희 - 1

 

내 친구 영희 - 1

초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 첫 과가 아직도 기억난다. "철수야 안녕" "영희야 안녕" 나의 절친은 대학 1학년때 같은 과였던 영희라는 이름을 가진 속초 촌녀였다. 대학 신입 오리엔테이션 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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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희와는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같은 조가 된 계기로 가까워져 50 중반인 여직까지 아주 가끔 소식을 주고받으면서 지낸다.

 

 '속초 촌년'

 

영희의 고향은 강원도 속초이다. 내 친구는 나름 고등학교 때 공부를 좀 한 편이었다. 그녀가 졸업한 고등학교에서 서울로 상경하는 빛나는 졸업생들의 명단을 축하 플래카드를 만들어 정문에 걸어 놓았는데  내 친구 이름도 거기에 있었다. 아쉽게 그녀는 대학에 와서 나처럼 전공이 맞지 않아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나와 더불어 학점을 밑바닥에서 오손도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자리를 지키고 서로의 우정을 다졌다 ㅠㅠ

 

과 친구 중에 한 명은 그녀에게 '속초 촌년'이라는 애칭을 붙여 주었다. 나 같으면 아무리 친해도 그런 별칭이 싫었을 텐데 영희는 별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다. 오히려 옆에 있는 내가 기분이 나빠 그 나불거리는 주둥이를 치고 싶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고구마는 사랑이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은 그녀의 따스한 정을 느끼게 해 준 선물이다. 1학년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그녀는 고향집으로 내려갔다. 무료하게 집에서 뒹글거리면서 지내는 중에 그녀가 서울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나를 위해서 선물을 갖고 왔다고 한다. 집 근처로 나가보니 고구마 한 박스를 속초에서부터 끌고 온 것이었다. 

 

어느 날 "내가 고구마를 좋아한다"라고 했더니, 그녀는 "우리 동네는 그런 거 안 먹고 버리는데 서울 애들은 이상하다"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말을 마음에 간직하고 방학 내내 잊지 않았다. 방학 끝 무렵에 친구는 그 작은 체구에 고구마 한 박스를 이역만리에서부터 이고 온 것이다. 겉으로는 도시녀처럼 시크한데 속에는 따스함이 가득 들어 있는 여자다!

삼음 고구마


마음을 따스하게 한 추억

 

영희와 나는 공통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다. 종교, 성향, 성격, 취미, 라이프 스타일... 등 별로 공통분모가 없다. 곰곰이 어떻게 영희와 아직까지 관계를 유지할까 생각해 봤다.

 

동병상련이었다!!!!  영희와 나는 전공이 맞지 않아 서로 방황하고 적응 못하고 헤매면서 동지애를 강하게 느낀 것 같다. 하지만 영희는 나하고 다른 기억을 꺼내 놓았다.

 

친구는 3년 전에 늦은 나이에 유학을 위해 먼 길을 떠나는 나와 남편에게 한 끼를 대접하고 싶다고 시간을 내어 지방에서 올라왔다. 그녀는 나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영희: 00야, 내가 너에게 잊지 못하는 고마움이 있어. 형부집에서 눈치 보면서 학교 다닐 때 언니가 겨우 차비만 챙겨줬거든. 그런데 내가 밥을 굶는 것을 알고 네가 자주 밥을 사줬어.

나: 그랬어?! 난 별로 기억이 없는데 ㅜ,ㅜ

 

갑자기 그녀가 눈물을 떨어뜨린다. 나도 덩달아 울고.......

 

갈수록 싸늘한 세상살이에서 따스한 추억을 소환해 낼 친구가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임을 그녀가 보내준 택배 상자 앞에서 깨닫는다.

 

바다가에 떠있는 빈병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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