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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에서의 깨달음

외할머니의 콩나물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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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밑이 빠진 독에 아무리 물을 부어봤자 양이 차지 않듯이 쓸데없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는 속뜻을 가졌다. 밑 빠진 독에 물은 채워지지 않지만 그 빠져나간 물은 주변 잡초들의 생명수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헛 된 일도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 미국에 사는 지인과 카톡 하던 중에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먼 이국 땅에서 콩나물을 키우고 있는 사진이었다. 비록 토기나 옹기로 만들어진 '시루'에서 전통적으로 키우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스테인리스 냄비에서 자라고 있는 콩나물이 신기하고 대견했다.

 

스테인리스 그릇에 키운 콩나물 사진

 

외할머니의 콩나물 키우기

 

'라때는' 콩나물을 집에서 키우는 집이 더러 있었다.

 

지인이 보내 준 사진 한 장이 어렸을 때 외할머니가 콩나물을 키우셨던 기억을 소환해 내였다. 외할머니는 부지런하셔서 계절에 따라 저장 음식을 만들고 제철의 음식을 우리에게 맛 보이셨다.

 

음식 솜씨가 좋은 할머니는 가족들의 먹거리도 집에서 손수 공급하셨다. 그중에 하나가 콩나물 키우기였다. 어린 나에게 그녀의 콩나물 기르기는 참 신기했다.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그녀의 공정 과정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옆에서 지켜보았다.

 

콩나물 키우기 워밍업

 

첫 번째 해야 할 일은 콩 고르기다. 작은 앉은뱅이 상위에 할머니는 콩들을 눕혀 놓고 좀 먹거나 상태가 좋지 않은 것들을 매의 눈으로 샅샅이 뒤져 찾아내셨다. 이렇게 온전한 것으로만 골라진 튼실한 메주콩이나 검은콩을 한 움큼 물에 불린다. 마술같이 슈퍼 크기로 바뀐 불린 콩을 바닥이 촘촘히 뚫린 시루 항아리에 올려놓고 검정 보자기를 덮어 놓는다. 물이 잘 빠져나가도록 시루를 바닥과 공간이 있게 만들어 준다.

 

"왜 검정 천으로 덮냐"라고 물었지만 할머니는 "그래야 잘 자란다"라고 하신다. 과학적인 대답하고는 영 거리가 멀었지만 어쨌든 나는 콩나물은 "깜깜한 것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판도라의 상자

 

그다음부터 할머니는 별 노력을 하지 않으시고 시루를 덮은 검은 보자기 위에 하루에 여러 번 바가지로 물을 날라 샤워시키셨다. 그녀는 우리에게 엄명을 내리셨다. 특히 호기심 천국인 나에게 "절대 보자기를 열어 보면 안 된다"라고 하셨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너무 궁금했다. 왜 열지 못하게 하시는지 내 안의 호기심 도깨비가 작동되었다. 당연히 나는 보자기를 들춰 보았고 별 움직임 없이 그 안에 퉁퉁 불어 터져 자빠져 있는 콩들을 보면서 실망했다. 음..... 하필이면 그때 딱 할머니한테 현행범으로 들켜 뒤지게 혼났다. ㅠ 나는 할머니의 헛(?) 수고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노느라 정신 팔려 시루에 있는 콩들을 잊고 지냈지만 할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수차례 물을 붓고 계셨다. 어느 날 검정 보자기가 봉긋 솟아오른 것이 불꽃같은 내 눈에 접수되었다.

 

기적을 일상에서 경험함

옹기 항아리에 담겨 있는 콩나물 그림
콩나물 키재기

 

 앗~~~~~~~ 기적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할머니가 드디어 검정 천을 걷어 내니 한치의 공간도 없이 빽빽이 자란 노란 콩나물 대가리들이 고개를 쳐들고 위로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할머니의 수고와 정성을 배신하지 않고 매일 그 사랑을 먹고 자란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았다고 그들의 성장이 멈추어진 건 아니었던 것이었다. 그때의 그 경이로움과 감탄은 여직도 잊혀지지 않고 내 가슴 중간에 콕 박혀 있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의 결과나 성과가 오감을 통해 느껴지지 않아 답답하고 포기하고 싶다면 '콩나물 기르기' 과정을 생각해 보면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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