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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만나는 심리학

가족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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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남 2녀 중의 중간이자, 장녀로 태어났다. 3살 아래 동생이 태어나면서부터 내 인생은 생존 그 자체였다. 어느 날 막내의 자리를 막 태어난 동생한테 하루아침에 빼앗긴 나의 신세는 처량하게 되었다. 위로 오빠한테 치이고 아래 여동생에게는 내 자리를 뺏기고 나의 설 자리가 없음을 깨달았다. 어린 나이에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나는 60 세대다. 그때는 남존여비 사상이 크게 지배를 받던 시기였다. 나는 가정에서 몸소 서열 차별과 남녀차별을 다 겪었다. 특히 외할머니가 바로 위에 있는 오빠와 차별을 크게 두었다. 어린 내 눈에 봐도 너무 잘생긴 오빠였다. 딸만 둘이었던 외할머니는 첫 외손주인 오빠를 정말 귀하게 대했다. 모든 면에서 나와는 다르게 대하는 것이 느껴졌다. 어린 나이에 봐도 먹는 거에서부터 큰 차별이 보였고 대하는 태도에서도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그나마 막내의 자리에서 권력을 누리고 있었는데 여동생이 태어나니 나는 그야말로 '찬밥'이었다. 어리바리한 나하고는 달리 동생은 가무에 능했다. 그래서 어른들의 기쁨조가 되어 사랑을 듬뿍 받았다. 부러웠다. 두터운 신임과 모든 권력을 누리는 첫째의 자리가 부러웠고 남자로 태어났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에 부러움과 억울함이 동시에 있었다. 또한 막내는 아무 노력 안 해도 그 자체로 사랑받고 암묵적인 권력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분했다! 

 

어렸을 때 위의 오빠와 아래 동생하고 많이 싸웠다. 오죽하면 어머니는 "동네 창피해서 이사 가야 된다"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우리의 싸움에 대해 걱정하셨다. 그 싸움의 주동자는 주로 나였다. 나는 늘 편애를 당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억울했다. 그 억울함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싸웠다. 집안에서 격투기, 권투, 태권도 등이 난무했다. 나의 여린 몸뚱이로는 저들을 때려 부술 수가 없어서 때론 무기도 동원되었다. 나는 점점 집안에서 싸나운 아이가 되어갔다.

초등학교 때로 기억이 난다. 어느 날 학교에서 혈액형 검사를 했다. 보건소에서 선생님이 나와서 검사를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나의 혈액형은 RH+ O형이었다. 이때 나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 단서를 찾게 되었다. 다른 식구들은 모두 A형인데 나만 O형인 것을 알게 되었다. 심리적 확신이 들었다. '나는 입양된 딸'이라는 확신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저들의 차별이 이해가 되었다. 단지 내가 중간 이래서, 여자래서만 받는 차별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나의 이 심리적 확신을 확증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어느 날 식구들과 드라마를 보는데 드라마 주인공이 자신과 가족들의 혈액형이 다른 것을 알고 충격에 빠지고...... 나중에 자신의 친부모를 찾는 내용이었다. 

나는 너무 기뻤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에 안 드는 이 가족이 내 가족이 아니라는 것에 감사와 희망이 생겼다. 이때부터 나 혼자 판타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나의 진짜 부모님은 형편이 어려워서 잠깐 나를 이 집에 맡겼고, 현재는 미국에서 성공해서 잘살고 계시다. 언젠가는 미국에 계신 나의 부모님이 나를 찾아오실 것이다'. 내가 현재 당하는 고난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차별해도 나는 개의치 않았다. 왜냐면 곧 나는 이 집을 떠나 미국에서 살게 될 테니깐 말이다.

 

신은 참 가혹하다! 나의 이 판타지가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중학교를 들어가고 생물 시간에 혈액형에 대해  배우면서 부부 모두 A형일 때도 O형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절망, 좌절, 낙담, 참담한 마음이 올라왔다.  미국에서 나를 기다리는 부모님이 안 계시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 나의 사춘기는 슬픔과 우울이었다.

아이들은 마술적인 사고를 한다. 이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러나 아이들에게 필요한 의존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상처를 받게 되고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아이는 안타깝게도 어른이 되어도 마술적인 생각에 머무르게 된다. 예를 들어 '언제 가는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 나를 신데렐라로 만들어 줄 거야'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내 인생은 달라질 거야'라고 늘 '가정법 과거'로 내 사고는 머물러 있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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