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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뉴질랜드에서 2년 간의 유학 생활

코로만델(Coromandel) 농장의 레이철 가족 이야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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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콘크리트 안에 갇혀 살다 보면 가끔 뉴질랜드의 초록빛이 그리울 때가 있다. 특히 봄이 시작되는 요즈음은 더욱더 그렇다. 방학 때마다 머물렀던 코로만델 농장의 주변은 온통 푸르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초록은 상큼하고 깔끔하면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는 느낌을 주는 색이다. 하루 종일 초록 빛깔로 휩싸인 농장에 있다 보면 나의 내면까지 초록빛으로 물들면서 치유가 일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2023.03.12 -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뉴질랜드에서 2년 간의 유학 생활] - 코로만델(Coromandel) 농장의 레이철(Rachel) 가족 이야기-1

 

코로만델(Coromandel) 농장의 레이첼(Rachel) 가족 이야기-1

뉴질랜드 유학 2년 차가 되고 두 번째 term break (2번째 term 방학)가 왔을 때 우리는 뉴질랜드 북섬, 코로만델 반도의 서쪽에 있는 한 마을에 있는 목장에서 보내게 되었다. 마라나타 농장 내가 머문

hasim2002.tistory.com

 

레이철 노모 이야기

 

레이철에게는 90이 넘은 노모가 계시다. 영국이 고향인데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 뉴질랜드로 이주해 온 이민자이다. 그녀는 네덜란드에서 역시 이민해 온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뉴질랜드에서 터전을 마련하고 현재까지 거주 중이다. 뉴질랜드에서 오래 사셨음에도 불구하고 뉴질랜드 땅을 참 싫어하신다.

 

노모는 레이철과 한 집에 살지만 개인 생활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할머니가 머무시는 방은 작은 응접실 겸 부엌이 있어 손수 자신의 식사를 챙겨 드신다. 굉장히 자주독립적이시고 자기 관리에 철저하시다.

 

젊었을 때 초등학교 교사를 했다는 그녀는 교사답게 지시적이고, 상대방의 바르지 못한 부분을 끊임없이 교정해 주려는 사명감이 투철한 분이시다. 이런 부분 때문에 노모는 레이철하고 자주 말다툼을 하신다. 레이철 성격도 보통이 아니지만 할머니 성품도 호락하지 않으시다. 모녀지간에서 피를 보는 사람은 레이철 남편 그랜트이다. 기가 센 두 여자 틈에서 그랜트는 늘 중재 역할을 한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비슷한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일상

 

레이철 노모의 하루 루틴은 기계적으로 정확하게 움직인다. 일단 아침에 일어나시면 간단한 식사를 하시고 볕이 잘 드는 발코니에 나와서 독서를 하신다. 한 시간 남짓 책 읽기가 끝나시면 점심시간까지 휴식 시간을 가지신다. 본인이 직접 원하시는 음식을 요리해서 점심을 드신 후에 클래식 감상에 들어간다. 한 시간 정도 집이 쩌렁 울릴 정도로 볼륨을 높여 음악 감상에 몰입하신다. 가끔은 오페라도 목청 높여 따라 부르신다. 그럴 때는 머얼리 집으로부터 도망쳐 나와야 한다. 그야말로 돼지가 목청 따는 날이어서 귀를 오염시킨다 ㅋ

 

가끔 할머니와 대화할 시간이 있는데 인지 능력이 저하되셨는지 하신 얘기 또 하시고, 물은 이야기를 되묻고 또 되 물으신다. 더불어 그녀와 대화하는 것이 쉽지 않다. 가는 귀가 잡으셨는지 당신 말씀만 하신다. 거기다 목소리는 고음이고 바이브레이션이 심해 알아듣기가 힘들다. 할머니 목이 타조처럼 주름이 자글자글해서 손으로 두툼하게 잡힐 정도로 쳐졌기 때문에 떨림이 심하지 않나 싶다.


노모의 리츄얼(ritual) 

 

할머니에게는 일상의 리츄얼이 있으시다. 요일마다 다른데 월요일은 독서 후에 편지를 쓰신다. 색색깔의 사인펜, 색연필을 책상에 잔뜩 늘어놓고 손 편지로 소식을 자녀들이나 지인들에게 보내신다. 화요일은 홈스쿨링 하는 손녀들에게 문학을 가르치신다. 시도 종종 쓰시고 화초도 가꾸시고 오후에는 성경을 읽으신다.

 

나는 그녀의 일상을 지켜보면서 럭셔리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90이 넘어서도 책을 읽고 시를 쓰며 음악 감상을 한다. 거기다 일상의 리츄얼을 갖고 자주독립적인 삶을 살아내는 그녀가 참 멋있다고 느꼈다. 또한 그녀를 보면서 어떻게 나이를 먹어야 하며 나이 들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녀에 대해 글을 쓰다 보니 안부가 궁금해진다. 아직 살아계신지? 여전히 일상의 리츄얼을 잘 해내시고 계신지? 레이철하고는 좀 덜 싸우시는지?

 

 

발코니에서 햇볕을 쬐는 사진
레이철과 대화중인 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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