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라그란(Raglan)에서 여름방학을 꽉 채워 보냈다. 우리는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서 저녁 먹고 석양이 질 때쯤 매일 해변 주위를 산책 겸 운동을 했다. 왜냐면,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피부암 환자가 제일 많다고 한다. 백인들의 피부가 약하기도 하지만 태양이 너무 강렬해서 장시간 노출하면 피부암에 걸릴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Raglan Fish' shop- Fish and Chips
라그란(Raglan)에 서핑으로 유명한 해변만큼 알려진 가게가 있다. 'Raglan Fish' 가게로 '피시 앤 칩스'로 유명세가 있는 음식점이었다. 부둣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로 테이크아웃고객들이 많다. 이 가게가 유명해진 것은 직접 잡은 생선을 가게에서 바로 손질해서 신선한 요리를 손님들에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또한 튀김옷이 얇고 바삭거리는 식감이 다른 가게와 차별이 된다.
역사와 전통이 젊은 뉴질랜드는 대표하는 전통음식이 없으며 음식 자체도 다양성이 떨어진다. 고작 그들이 내세우는 음식은 오븐에 구운 치킨이나 '피시 앤 칩스'(튀긴 생선과 감자 칩)였다. 더군다나 '피시 앤 칩스'는 엄밀히 말하면 그들의 음식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영국에서 건너왔기 때문이다.
피쉬앤칩스 샵의 풍경
학교 친구들이 방학 동안에 라그란에 머문다고 하니깐 꼭 'Raglan Fish'에 가서 '피시 앤 칩스'를 먹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추천했다.
라글란은 워낙 마을이 작아 가게를 찾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는데 마침 우리가 방문했을 때가 휴가철이어서 사람들이 가게 밖까지 넘실거렸다. 덩치가 헤비급인 키위들(뉴질랜드 사람들을 부르는 애칭) 사이를 비집고 겨우 줄을 서서 주문하고 번호표를 받았다. 가게 안에는 테이블이 두, 서너 개 있었으며 그 주변에 음식을 주문하는 사람들과 기다리는 사람들로 여유 공간이 없었다.
직원이 마이크를 사용해서 번호를 부를 때마다 고객들은 복권이라도 당첨된 듯이 즐거워하며 주문한 음식을 받아 갔다. 우리도 곧 그 시간이 오리라 기대했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훌쩍 1시간을 넘어가자 용암이 부글거리듯이 서서히 짜증이 오르기 시작했다. 앉을자리도 없고 서서 긴 시간을 기다리느라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픈데 언제 내 번호를 불러 줄지!
키위들 시민의식
키위들의 여유로움은 어디서 올까?
어디를 가든지 느끼지만 키위들은 인내심이 강하다. 2년 동안 뉴질랜드에 머물면서 마트나 쇼핑몰등 줄을 서서 기다릴 때 그들이 컴플레인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무던하게 묵묵히 기다리거나 함께 온 친구와 가족들 혹은 처음 보는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시간을 보낸다.
여기 라그란 '피시 앤 칩스' 가게에서도 그랬다. 날씨도 덥고 사람은 많고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데, 초조하게 목을 기러기처럼 빼고 기다리는 나와는 달리 그들은 여유롭게 이야기들을 나눈다.
언젠가 학우인 네덜란드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자신도 그런 경험을 했다면서 키위들의 무던함과 높은 시민의식에 대해 놀랐다고 한다.
어쨌든 배도 고프고 오래 서 있었더니 다리도 아파서 주문한 것을 포기하려는데 우리 번호를 부른다. 자동으로 발걸음이 멈춰진다. 오래 기다린 보람은 음식의 맛이 결정하는데 생각보다 평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우리나라 길거리에서 파는 튀김이 더 맛이 우수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거 하나 먹겠다고 그 오랜 시간을 고생한 것'을 생각하니 살짝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덕분에 키위들의 성숙된 시민의식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었다.
한국의 시민의식
수업시간에 한국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워낙 한국인을 많이 경험한 선생님은 우리보다 더 한국인의 특징과 성향을 잘 알고 계셨다.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한국 사람들은 평소에는 온순한데 화가 나거나 컴플레인이 생기면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라고 하셨다.
그들의 문화에서는 화를 내거나 큰 소리를 내는 것은 미성숙한 태도로 본다. "한국인들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감정이 섞인 의사소통"을 한다고 말하는데 부끄러웠다. "우리가 영어를 못해서 그래"라고 대충 어물거렸는데 그들의 말이 사실이다.
조급증
한국인들은 자신의 이익과 관련되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면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우리'라는 집단 문화 의식이 강하면서도 자신과 관련된 것에 대해서는 때로는 냉정한 모습을 보인다. '공항에서 비행기가 연착되었을 때 컴플레인 하는 나라는 한국인밖에 없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나 또한 터키에서 비행기가 연착되었을 때 프런트에 가서 강력하게 항의를 하는 한국인들을 보았다.
나는 위와 같은 일들이 '조급증'에서 왔다고 본다. 갑작스러운 경제 발전 속도가 '빨리빨리'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가까이 와 있다. 경제 발전만큼 성숙한 시민의식도 더불어 함께 따라가야 된다는 생각을 먼 이국땅에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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