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21 -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뉴질랜드에서 2년 간의 유학 생활] - 피시앤칩스 샵에서 인터뷰
피시앤칩스 샵에서 인터뷰
이날도 일찍이 저녁을 챙기고 동네 한 바퀴 산책에 나섰다. 늘 다니던 산책 코스가 아니라 반대편 동네로 가보기로 했다. 어디로 가든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고 석양이 지어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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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에 이어 라그란(Raglan) 피시앤칩스 샵에서 본격적으로 세프로 경험한 시간을 풀어놓으련다. 일을 시작해 보니 내 포지션은 파트 타임제(part time)로 휴가 간 직원이나 사정이 있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 대신 일하는 자리였다. 전문적인 용어로 우리는 이것을 '땜빵'이라 부른다. 일하는 시간이 매일 규칙적이지 않고 그날그날 스케줄에 따라서 바뀐다. 처음에는 좀 실망했는데 일을 해보니 오히려 정규직으로 채용되어 하루 8시간 꼬박 매달리는 것보다 나았다.
나의 주 업무
나의 주 업무는 세프로써 7~8 가지 종류의 주문한 생선과 감자 스틱을 튀기는 일이었다. 거기다 15 가지 종류의 싸이드(side) 요리들과 피시버거에 들어갈 음식 재료도 다루었다. 총 30여 가지 정도의 메뉴가 매일 나가고 있었다. 첫 출근하자마자 매니저가 기본적인 매뉴얼들을 안내한 후 바로 주문받은 메뉴를 요리하는 시범을 보였다. 한국 아줌마에게는 '누워서 떡먹기였다'. 요리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단순했는데 문제는 생선 종류가 많다는 것이었다. 통째로 튀기는 생선 외에 무게에 따라 주문이 나가는 생선들은 옷이 홀딱 벗긴 체 쟁반(tray) 위에 쌓여 있었다. 옷을 다 벗고 있으니 어느 놈이 레몬 피시(lemon fish)이고 누가 거널드(gurnard fish-붉은 물고기 종류)이며, 돔(snapper)인지 당최 구분이 안 간다. 처음에는 매니저가 생선 옆에다 이름을 적은 종이를 올려놓았는데, 시간이 지나자 생선의 물기로 인해 종이 위에 적힌 펜자국이 번져 이름을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거기다 주문받은 튀김용 생선은 오로지 손의 느낌으로 무게를 감지해서 튀겨야 한다.
좌충우돌 셰프 경험
어쨌든 나는 어디를 가든지 당당한 천하무적 한국 아줌마여서 못해낼 것이 없었다. 보통 생선과 감자칩(피시앤칩스)을 세트로 주문을 한다. 생선은 그램으로 무게를 달아서 튀긴다. 생선 종류에 따라 100g~120g이 최소 단위이다. 처음 일해보는 나에게는 손의 감으로만 무게를 재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넉넉하게 튀겼다 ^^ 거기다 주문이 한꺼번에 들어오면 정신이 없어서 홀딱 벗겨 놓은 생선 종류를 구분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이것도 느낌을 가지고 튀김옷을 입혀 기름에 투척했다. 가끔 비싼 돔(키위들은 비싼 돔을 튀겨 먹는다. 그만큼 요리법이 다양하지 않고 생선 다루는 것을 싫어한다)을 시켰는데 저렴한 거널드(gurnard fish) 생선으로 나간 적도 꽤 있다. 튀김옷을 입혀 놓으면 그놈이 그놈이다. 감사하게(?) 많은 실수를 했음에도 단 한 번도 손님들에게 컴플레인받은 적이 없었다.
생애 처음으로 음식점에 고용되어 정식으로 해보는 세프질이 힘들지만 의외로 재미있었다. 나는 단지 세프 경험만 한 게 아니라 가게를 오픈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마무리까지 하는 일들을 두루 다 배웠다. 아침 8시부터 오픈 준비가 시작되는데 먼저 해야 하는 작업은 청소이다. 그전날 마감할 때도 청소를 하지만 아침에 해야 되는 청소 구역은 따로 있다. 함께 청소하던 직원이 "너처럼 열심히 청소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라고 한다. 한국인의 성실함이 DNA 속에 온통 박혀 있음을 이 먼 타국땅에서 느낀다. 청소 후에는 그날 장사할 요리 재료를 준비한다.
Raglan fish(라그란 피시)는 낚시꾼과 물고기들의 천국
내가 일한 'Raglan fish' (라그란 피시) 가게 주인은 어업용 큰 배를 소유한 부자다. 직접 생선을 잡아 오면 고용된 직원들이 이른 아침부터 생선을 손질해서 셰프가 튀김옷만 입혀서 튀기도록 깔끔하게 작업해 놓는다. '라그란 피시(Raglan fish)' 가게, 바로 앞은 작은 부두가가 있어서 늘 낚시꾼들이 찾아온다. 여기가 입질이 잘되는 곳으로 소문이 난 것은 직원들이 생선을 다듬은 후 그 내장을 바닷가에 바로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풍족한 먹잇감이 물고기들을 떼로 불러들이고, 부두 주변에 상주하게 만든다. 라그란 피시 가게 안에 생선을 다듬어 내장을 버리는 바닥에는 어린아이 허벅지 만한 크기의 작은 구멍이 뚫어져 있다. 그 안으로 바닷속이 보인다. 그 아래로 king fish(킹 피시- 크기가 작은 참치 수준이다. 처음에는 상어인 줄 알았다)가 떼로 돌아다닌 것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그곳은 물고기들이 노력하지 않고 쉽게 배를 채우는 낙원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낚시꾼들에게 잡히는 죽음의 장소이다. 물고기 인생에서도 거저 쉽게 얻는지는 것은 없음을 본다. 모든 곳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음을 미물들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라그란 피시 가게에서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10대부터 20대까지였다. 주로 20대가 대부분이었는데 오래된 베테랑답게 그들의 손놀림은 예사롭지 않았다. 생초보 셰프 경험을 하는 나에게는 모든 것이 처음이어서 배울 것이 산 같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좌충우돌하고 영어도 잘 못하는 나이 든 이방 여자를 타박하지 않고 친절함으로 잘 대해줬다. 그들이 있었기에 내가 맡은 임무를 무사히 끝내게 되어 감사함이 컸다. 나 혼자 잘나서 되는 것은 없다. 내가 잘 된 것은 뒤에서 나를 돕는 누군가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내가 나의 됨에 대해 겸손할 줄 알아야 함을 이국땅에서 깨닫는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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